“제작사·배우들 무보수 품앗이로 담은 反戰 메시지”… ‘작은 연못’ 이상우 감독
후드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이상우(59) 감독.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영화 ‘작은 연못’은 3개월 만에 촬영을 마쳤지만 제작과정은 7년 남짓 걸렸다. 그 긴 시간을 견뎌낸 끈기와 에너지가 묻어나왔다.
12일 서울 명동 예술극장에서 만난 이 감독은 “돈이 없으니까 시간을 오래 끌 수가 없었다. 우물쭈물하면 못 찍는 게 영화다. 촬영할 동안은 먹고 찍고 자고 찍는 식으로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6.25 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남하하던 피난민에 대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 사건으로 500여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노근리 사건’을 다룬 ‘작은 연못’은 그간 금기시 되어온 근현대 사건의 이면을 들췄다는 점에 이목을 끌었지만, 특이한 제작방식도 인구에 회자됐다. ‘전쟁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제작비가 10억 원밖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무료 봉사 차원에서 배우들, 영화 제작업자들이 노동을 품앗이해서 가능했지요. 시나리오랑 감독은 제가 했으니 돈이 안 들었고, 배우들은 영화 취지에 공감해서 무보수로 출연했어요. 영화 그래픽과 세트 작업 등도 관련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나섰습니다. 대문바위골 세트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부분만 만들고 나머지는 CG로 처리했어요. 시장가격대로 돈을 냈더라면 10억 원 정도로 끝낼 수 없었겠지요. 앞으로 이런 작업은 다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게 신기해요.”
영화는 비극적 현대사를 다루지만 특정 대상을 향해 적의를 나타내지 않는다. 심지어 가해자인 미군 병사들도 악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 게 싫어요. 미군이 총 쏘는 장면이 왜 필요하죠? 누군가가 죽는 모습이 필요하지 왜 죽이는 모습이 필요합니까. 저는 반전을 말하고 싶었지 가해자에 대한 보복을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사병이 무슨 죄입니까. 오히려 문제는 전쟁을 계획하고 이익을 챙기는 윗사람들이지요.”
반전 메시지는 강요나 연설이 아닌 따뜻한 소묘로 강화된다. 순박한 대문바위골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과 그들의 이유 없는 죽음이 대비되면서 전쟁의 참혹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대문바위골 촬영지를 물색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전북 순창 섬진강 상류에서 4∼5km 걸어가다 보니 골자기 끝에 바위가 있더군요. 이런 곳에 바위가 있네, 참 신기하다고 만져보는데 안쪽에 마을이 있는 거예요. 총 50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은 하도 외떨어져 있어서 전쟁이 난 지도 몰랐대요. 이 마을이다 싶었어요.”
이 감독은 연극판에서는 베테랑이지만 영화판에서는 ‘신입’이다. 하지만 그는 “제작방식에 있어서 연극이 수공업이라면 영화는 좀더 기술적인 것 같다. 다양한 촬영 방법 중에 나는 ‘이상우식 방법’으로 밀고 나간다고 정했다”고 말했다.
자기만의 영상미학이라고 할 이른바 ‘이상우식 방법’은 카메라의 정직한 힘을 믿는 데 있다. 그는 “카메라 가지고 장난치지 말자, 거짓말하지 말자는 원칙으로 카메라를 최대한 흔들지 않고 멀찍이 찍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사실적인 묘사는 영화에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을 주지만 곳곳에 배치된 영화적 장치 덕분에 판타지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영화에 불쑥 등장하는 고래의 이미지가 그 예다.
“하도 사람들이 고래의 의미를 물어봐서, 이창동 감독은 아예 저보고 고래에 대한 질문에는 답변하지 말라고 충고하더군요. 고래는 무의식적인 메시지입니다. 이건 10시간 얘기해도 모자라요. 관객이 알아서 느껴야 해요.”
그럼에도 기어코 대답을 들어야겠다고 하자 이 감독은 “우리는 고래를 한번도 못 봤다. 포경선 탄 사람 아니면 못 봤을 것이다. 고래를 보면 얼마나 신비스럽겠냐”고 되물었다. 이어 “굉장히 크고 묵직한 고래는 소중한 존재다. 우리는 고래를 살리자고 말하지 않느냐. 사람도 고래처럼 정말 소중하고 신비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고래를 살리자고 하듯이 사람을 살리자는 메시지를 영화 맨 밑바닥에 넣었다”고 답변했다.
영화는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끝난다. 5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어느 누구도 미국에 대한 원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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