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안중근’ 펴낸 작가·현대사 연구가 박도씨 “뤼순 흙 가져다 서울 가묘에 뿌렸죠”

Է:2010-03-2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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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순국한 안중근 장군의 마지막 여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그 분의 숭고한 뜻을 되새겨보고 싶었습니다.”



작가이자 현대사 연구가인 박도(65·사진)씨가 안중근 의사의 거사 결심에서부터 거사 성공, 순국에 이르기까지 150일간의 여정을 현지답사를 통해 재구성해낸 ‘영웅 안중근’(눈빛)을 펴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의 자취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은 답사기는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1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하얼빈역에서 거사에 성공하고, 이듬해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의 여정을 더듬는다.

박씨는 지난해 10월 26일 속초항을 출발해 러시아 자루비노항에 도착한 뒤 11월 3일까지 9일 동안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쑤이펀허, 하얼빈, 다롄, 뤼순 등을 찾아다녔다.

그는 “안 장군에 대한 책과 연구자료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 분의 마지막 행적을 따라가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며 “장군이 걸어갔던 길을 되밟아가면서 그 분의 거룩한 뜻을 100분의 1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안 의사가 결사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자른 곳에 세운 ‘단지동맹유지비’와 의거 현장, 뤼순 감옥 등을 돌아보며 안 의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차를 타고 40여 시간이 걸려 도착한 하얼빈역 의거 현장에서 박씨는 안 의사의 저격 지점과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진 지점을 알려주는 표식을 발견하고 감회에 젖는다. 이 표식은 자신이 10여년 전 이 곳을 답사한 뒤 쓴 ‘항일유적답사기’에서 의거현장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고 지적하자 국가보훈처와 광복회가 외교적 노력을 통해 성사시킨 것이라고 박씨는 설명했다. 그는 “현장에 표식을 마련한 것은 잘 된 일이지만 의거현장이라는 걸 알리는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뤼순 감옥을 둘러본 뒤 안 의사의 유해를 아직까지도 찾지 못한 아쉬움을 그곳의 흙을 한 줌 담아 오는 것으로 달랬다. “감옥에서 2㎞쯤 걸어 올라간 산기슭에 뤼순 감옥 옛 묘지 터가 있었는데 안 장군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파트 단지들이 인근에 들어서고 있어 그 곳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귀국한 후 서울 효창공원 안 장군의 가묘(假墓)를 찾아 뤼순에서 담아온 흙을 뿌려줬다”는 박씨는 “유해를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왜 망했는지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일본을 감정적으로 미워만 할 것이 아니라 국력을 길러 일본을 앞서는 것이 안 장군에게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요.”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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