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규환 (11) 故 김동휘 장관 주선으로 승합차·장학금 마련
김동휘 외무부 차관의 방문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1979년 당시 외무부와 천사원은 자매결연을 했는데, 그해 말 김 차관이 성금을 들고 찾아왔다. 나는 시설 현황을 설명한 뒤 장애고아 시설을 시작하려 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장애아동들 중에는 환자가 자주 발생한다. 낮에는 택시를 타고라도 병원에 갈 수 있지만, 밤에는 환자를 업고 뛰느라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었다. 현대 아산재단에 승합차 한 대를 기증해 달라고 신청했다가 한 차례 거절당한 뒤였다. 나는 김 차관에게 “현대에 말씀하셔서 차 한대만 얻어 주실 수 있느냐”고 어렵사리 부탁을 했다.
“외무부 차관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제 힘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 차관은 거듭 “죄송하다”며 미안해했다. 그리고 석 달쯤 지났을 때였다. 상공부 장관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알고 보니 김 차관이 상공부 장관으로 승진한 것이었다.
“원장님, 저 김동휘입니다. 그때 말씀 하신 거, 조만간 좋은 소식이 갈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 시간 뒤 아산재단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사무실로 와 달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담당 부장을 만났는데 나에게 대뜸 “상공부 장관과 잘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나는 회장실로 안내됐고, 그 방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문인구 상무가 앉아 있었다. 이들은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상공부 장관과 집안 되십니까?”
“그렇지는 않지만, 잘 알지요.”
“원장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애로사항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애초 봉고차 한 대를 목표로 했지만, 이왕 정 회장을 만난 김에 큰 부탁 한 가지를 해 보자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저희 천사원에서 지난해부터 장애 고아들을 보호하게 됐습니다. 이들을 양육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봉고차도 저희에게 꼭 필요하지만, 한 가지 부탁을 더 드리고자 합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전국 고아원 아이들은 만 18세면 법적으로 독립을 해야 합니다. 시설을 나가면 국가도 돌봐주지 않고, 시설 원장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역시 새벽부터 우유 배달, 신문 배달, 구두닦이 등 갖은 고생을 해야 겨우 학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고아들도 도와주면 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조건 없이 대학 장학금을 주십시오!”
내 말이 끝난 뒤 정 회장은 그 자리에서 문 상무와 담당 부장에게 지시했다.
“즉시 파악해서 장학금 전액과 생활비 일체를 주도록 하지.”
내 삶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짜릿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 회장 지시와는 달리 이후 실제 장학금을 지급할 때는 등록금만 나왔다. 생활비의 경우 정확한 통계나 계산을 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실무진에서 달리 결정한 것이었다.
천사원 출신 중에는 80년부터 현대 아산재단에서 받은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여러 명 있다. 아산재단은 81년 천사원 내 대영학교에 필요한 책걸상 등 비품을 제공했고, 은평재활원과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등의 시설 개선 작업에도 기금을 지원해 줬다.
나는 그 이후 김 장관이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순직했다는 비보에 몹시 가슴 아팠다. 생존해 계셨더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분이었고, 천사원과도 더 많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컸다.
정리=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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