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이런 거구나 그 느낌을 담았죠”… 소설집 ‘대설주의보’ 펴낸 윤대녕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봄날의 오전. 서울 삼청동 길에서 만난 그에게서는 연둣빛 봄 한가운데임에도 왠지 모를 고독의 향이 풍겼다. 특유의 예민한 감성을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내며 문학계의 ‘인상주의 화가’로 불리는 소설가 윤대녕(48). 소설집 ‘대설주의보’(문학동네)를 펴낸 그를 18일 만났다.
말수가 적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는 소설집을 펴내면서 겪었던 사유의 변화와 달라진 생의 감각에 대해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대설주의보’는 그간의 윤대녕 소설과 닮은 듯 하면서도 닮지 않은 작품집이다. 인간 내면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생생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미려한 문장은 여전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일상을 향하고 그러기에 서사는 한결 인간적이다.
“조금 변했어요. 예전엔 문학에 대한 자의식, 배타적 자부심 같은 게 훨씬 강했죠. 소설 역시 독자를 고려하기보다는 자기 구원적 측면이 강했는데 이젠 ‘책은 독자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독자가 충분히 향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쪽으로 변했죠. 좀 더 보편적이고, 다채로운 서사를 통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을 확장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어요. 아무래도 나이가 들며 생에 대한 감각이 변하니 그런 거겠죠.”
‘보리’ ‘대설주의보’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등 7편이 묶인 이번 소설집은 “과감하게 말하면 한 편의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라는 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한 가지 사유로 엮인다. 이는 “만남과 헤어짐은 불가항력, 그게 인생이니 받아들여라”라는 허무한 깨달음이다. 하지만 이 깨달음은 생의 무력함을 더하는 게 아니라 상처를 끌어안고 사람을 위무하는 묘한 힘을 발휘한다.
만나도 이루어질 수 없고, 그럼에도 또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인연에 대해, 그리고 그 인연의 끈이 서로를 베는 상처에 대해, 작가는 “아침이 오면 헤어져야겠지만, 내 어찌 너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보리’ 중) “돌아올 사람은 결국 돌아오게 되는 것”(‘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중)이라고 독자를, 그리고 작가 자신을 토닥인다.
“늘 그리워하지는 않아도 언젠가 서로를 다시 찾게 되고 그때마다 헤어지는 것조차 무의미한 관계가 있다”(‘대설주의보’ 중)
‘대설주의보’는 1997년 헤어진 연인이 12년의 시간을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만나는 내용이다. 2008년 1월 무렵 대설주의보가 내린 백담사에서 ‘20분이면 갈 거리를 두 시간 걸리게 하는’ 큰 눈을 헤치고 윤수와 해란은 산 중턱에서 조우한다.
“‘다시는 안 만나겠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또 만나게 되는 그런 경우들을 경험하면서 ‘삶은 이런 거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어요. 남녀 관계 뿐 아니라 모든 관계가 다 그래요. 사람이 사는 데 있어 인위적으로 안 되는 일들이 존재하는 거고, 또 그런 걸 받아들이면서 역동적으로 살아나가는, 그런 게 삶인 것 같아요.”
그는 “‘대설주의보’는 2008년 겨울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쓴 것이다. 내 생에서 모종의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는데, 과연 그 심정을 담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모종의 변화’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면 모종이라고 쓰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어떤 의미에선 내내 충돌해오던 자연인 윤대녕과 작가 윤대녕이 화해를 한 시기였고, 그렇기에 ‘관계’라는 문제에 더 깊이 집중했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인간에겐 누구나 일상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외부적 삶과 욕망으로 가득한 내부적 삶, 두 가지가 있어요. 어느 게 진짜 삶인지는 모르는 거죠. 이런 속에서 폭넓은 진실을 발견해가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고립적 인물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등장인물을 만들고, 더 세밀하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생을 들여다보려고 해요. 등단 20년이 되기도 했고, 앞으론 좀 더 절박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는 꽃이 피면, 견딜 수 없는 허무함과 고립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품은 고독의 향은 결국 피었다 질 수밖에 없는 자연의 진리 앞에 불가항력인 삶을 깨달아버린 숙명의 향인지도 모르겠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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