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주은] 아주 특별한 보양식

Է:2010-03-18 18:16
ϱ
ũ
[살며 사랑하며-이주은] 아주 특별한 보양식

냉면집에서 주는 짭짤하고 따끈한 육수를 마시고 싶어서 매운 회냉면을 주문했다. 날씨는 겨울에 버금가는데 마음은 봄이라 부실하게 입고 나온 날이었고, 그래서인지 주전자로 부어주는 육수를 호호 불며 마시는 게 훈훈해져서 좋았다. 오늘 먹는 육수는 내겐 아주 특별한 보양식이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좀 길다.

아주 오래전 프랑스에서는 ‘레스토랑’이라는 단어가 먹는 장소가 아니라 음식이름이었다. 긴 여행 중 잠시 머물다 가는 투숙객들을 위해 민박집에서 상시 끓여놓고 있다가 한 사발씩 인심 좋게 제공했던 육수 이름이 바로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은 회복해준다는 의미의 ‘restore’라는 어원에서 파생되었는데, 15세기 무렵까지도 프랑스에서는 양고기나 쇠고기 등 각종 고기를 푹 삶아 우려낸 맑은 국물에 소금과 향료, 그리고 몸에 좋다는 약간의 보양재료를 함께 넣어 끓인 후 수시로 따끈하게 한 컵씩 부어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 마시면 몸도 마음도 전부 회복된다는 의미에서 그 육수를 레스토랑이라고 불렀다.

자기만의 비법으로 만든 보양식 육수로 유명해진 숙박업소들이 곳곳에 입소문이 나고, 아예 멀리서 그 집 고유의 육수를 맛보러 사람들이 찾아오는 식으로 상황은 점차 바뀌었다. 민박집 주인은 본업인 숙박일은 그만두고, 부업인 육수 판매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육수만으로는 뭔가 부족해서 빵도 끼워 팔고, 야채와 누들과 스테이크 등 이것저것 손님이 요구하는 대로 만들어서 팔다가 점점 수십 가지 메뉴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전통 깊은 레스토랑에 들어가도 메뉴판에서 본래 그 이름을 달게 만든 레스토랑이라는 육수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음식의 이름이던 것이 그 음식을 파는 장소로 바뀌면서, 덧붙여 팔던 음식들만 살아남고 정작 주가 되던 그 음식은 사라져버리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 기력도 회복시키고 지친 마음도 보듬어주는 음식이란 말도 되지 않는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없애버린 것일까.

하지만 내겐 그런 음식이 한낱 꿈만은 아니다. 나에게는 밥 먹을 정신이 아닐 때 “밥 든든히 챙겨 먹어라”고 전화를 하시는 분이 있다. 멀리 떠나있을 땐 “집 떠나 있을 때는 되도록 익힌 음식을 먹어야 한다” 하시고는 그분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신다. 기쁠 때에도 축하대신 “돈 아끼지 말고 최고 비싸고 좋은 음식으로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어라” 하실 뿐이다.

모든 걸 먹는 것으로 귀결시키는 그분 때문에 예전엔 대화 도중에 짜증이 났었는데, 요즘엔 이상하게도 그 말씀이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엄마, 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온 몸이 꽁꽁 얼었어요.”

전화기 저편에서 예의 그 정겨운 처방이 들려온다. “뜨끈한 육수라도 좀 마시지 그러니?” 오늘 먹은 냉면집 육수가 아주 특별한 보양식인 이유는 바로 그 전화 속 주인공의 사랑 때문이다.

이주은 성신여대 미술교육 교수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
Ϻ 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