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규환 (6) MCOR 지원으로 번듯한 거처 마련… 1964년 원장 취임

Է:2010-03-17 19:03
ϱ
ũ
[역경의 열매] 조규환 (6) MCOR 지원으로 번듯한 거처 마련… 1964년 원장 취임

천막 2개로 시작한 은평천사원은 얼마 뒤 미 군사고문단으로부터 50평 크기의 퀀셋 막사(야전용 반원형 막사) 두 동을 지원받아 기숙사를 세웠다. 집다운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1960년이었다. 한 미국 후원자에게 5000달러를 후원받아 방 8개가 딸린 ‘평화의 집’을 건축했다. 그리고 그해 미국 감리교 해외구제회(MCOR)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MCOR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의 사회사업시설 복원과 농촌지역 구제 등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이곳은 고아원, 사회시설, 농촌양곡은행 등을 도왔고, 사회복지시설 35곳도 지원했다. 이 MCOR 2대 지부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홀컴씨는 나와 특히 인연이 깊었다. 그는 나를 친아들처럼 아껴줬다. 데이비드라는 내 영어 이름도 그가 지어 준 것이다. 홀컴씨는 보이스카우트, 밴드부, 4H 클럽과 화훼사업에 이르기까지 초창기 천사원 운영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 천사원의 운영 기록을 보면, 정부보조금은 10%에 머물렀고, 60% 이상은 MCOR이 담당하고 있었다. 이는 73년 MCOR이 국내에서 활동을 완전히 접을 때까지 계속됐다.

나는 64년 은평천사원 원장이 됐다. 당시 원장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젊다는 이유로 국내 이사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아펜젤러 할머님과 홀컴씨의 지지로 원장에 취임할 수 있었다.

60년대 초반 천사원 아이들은 은평구 일대를 주름잡았다. 몰려다니며 사고치는 일도 많았다. 아이들은 예사로 돈 안 내고 버스 타기, 동네 주민이 키우던 개나 닭 잡아먹기, 이웃집 과일 서리 등을 했다. 심지어 남의 집 장독 뚜껑을 열고 고추장을 퍼먹기도 했다.

한번은 주민들이 경찰서에 진정을 낸 것이 발단이 돼 서부경찰서 경찰이 트럭을 몰고 와서는 중3 이상 되는 아이들을 모조리 잡아갔다. 다음날 아침 나는 부랴부랴 경찰서로 찾아갔다. 서부경찰서 서장은 알고 지내던 장로님인데, 일부러 ‘서장님’이라 하지 않고 ‘장로님’이라 부르며 선처를 호소했다.

“장로님, 이 애들은 모두 부모 없는 아이들입니다. 장로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서장이 형사과장을 불러 조사기록을 가져오게 했다. 밤새 지하실에서 조사 받으며 예전에 저지른 자잘한 잘못들까지 모두 기록돼 죄목이 꾀나 많은 상황이었다. 거듭 선처를 호소하자 서장은 아이들을 모두 데려오게 했다.

“너희들 모두 형무소 가야 하는데, 조 원장님의 특별한 부탁 때문에 봐준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한번은 좋은 일로 여러 일간지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힘들게 살아가는 결핵촌 주민들을 돕겠다며 몇몇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황규호를 비롯해 대여섯 명의 아이들은 새벽에 서울역에 나가 신문을 팔았고, 6개월간 고생해 모은 돈으로 천사원 옆 결핵촌에 월동용 연탄 1000여장을 기증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들보다 더 춥고 외롭게 겨울을 나는 이웃들의 모습이 아이들 눈에 띄었을 거라 생각됐다. 용돈도 없이 생활하는 원생들이 남을 돕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너무나 고마웠다.

정리=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Ŀ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