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CEO 리더십-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우향우 정신’으로 제철보국 일군 ‘한국의 카네기’

Է:2010-03-1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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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CEO 리더십-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우향우 정신’으로 제철보국 일군 ‘한국의 카네기’

1971년 초 경북 포항 영일만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 1기 설비 건설현장. 국민의 성원 속에 착공(1970년 4월)된 건설공사는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일관제철소 건설경험과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공사 진행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바닷바람에 모래가 날려 눈도 뜰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 직원들과 근로자들은 쉽게 지쳐갔다.



국가경제 기초소재인 철강 부족을 하루빨리 해소하기 위해 계획기간 내 준공을 꿈꾸던 박태준 명예회장(당시 사장)의 입술은 바짝 타들어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현장을 순회하며 직원 및 근로자들을 독려하던 그는 이같이 말했다.

“국가 숙원사업에 동참한 긍지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혈세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만큼 우리 모두 우향우해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

불퇴전의 각오로 건설에 매진하자는 최고경영자의 의지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결국 예정보다 1개월 앞당긴 73년 6월 9일 우리나라 최초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흘렀고 한 달 뒤 연간 조강생산능력 103만t의 1기 설비가 성공적으로 완공됐다. 이후 ‘우향우 정신’은 오늘날 포스코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이자 기업문화가 됐다.

박 명예회장에게 철은 곧 국가였다. 미국 철강왕 카네기는 당대 35년 동안 연간 조강생산 800만t을 이뤘지만 그는 25년간(1968∼1992년)의 사장 및 회장 재임기간 중 2100만t을 달성했다. 자본은 물론 기술, 자원 등 철강산업 발전을 위한 조건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카네기보다 짧은 기간 3배에 가까운 생산능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철에 대한 열정과 완벽주의 때문이었다.

1927년 9월 29일(음력) 현재 부산 기장군 장안읍 갯마을에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일본에 일자리를 구해 건너간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인 학생이 일본 학생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공부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40년 이야마북중학교에 진학한 박 명예회장은 2차대전 기간 중 제철 근로봉사에 동원됐다. 철과의 첫 만남이었다. 당시 현장 반장은 그가 철광석을 사전 처리하는 소결 공정에 상당한 소질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후 45년 일본 와세다대학에 합격했지만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이듬해 남조선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군 생활 중 박 명예회장은 리더십과 경영을 배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67년 그에게 텅스텐 수출업체 대한중석 사장을 맡겼다. 대한중석은 당시 한국에서 유일한 외화벌이 국영기업이었다. 박 명예회장은 대한중석을 1년 만에 흑자기업으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자립경제 달성을 위해 일관제철소 건설계획을 세운 박 전 대통령은 사업 주체로 대한중석을 선정했다. 68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이 공식 출범했다. 일관제철소 건설은 보통 제선-제강-압연공장 순으로 건설되지만 포스코는 반대 과정을 택했다. 공정이 짧은 압연 및 제강공장을 먼저 완성하고 수입한 반제품으로 완제품을 생산, 이윤을 제선공장 건설에 투자하면서 제철소를 완성해나간 것이다.

81년 2월 4기 설비 준공까지 포항제철소 건설은 양질의 철강재를 생산,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제철보국(製鐵報國·철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한다)’ 의지 하나로 매진한 결과물이었다. 68년 회사 창립 13년 만에 연간 조강생산 910만t 규모 대단위 제철소를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가장 짧은 기간에 완공한 것이다. 1기 건설에서 t당 투자비는 다른 나라 제철소(t당 500달러)의 절반 수준(260달러)이었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은 공기업 체제에 따르는 비효율과 부실 가능성을 막기 위해 책임문화 정립에도 중점을 뒀고 이는 곧 완벽주의로 연결됐다. 그는 77년 포항 3기 설비 발전송풍 공사현장을 돌아보던 중 부실현장을 발견했다. 기초 콘크리트 타설이 공기에 쫓겨 10㎝쯤 덜 들어가게 시공됐던 것. 이미 공정은 80%가량 진행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은 현장 책임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다이너마이트로 발전송풍 설비를 모두 폭파토록 지시했다. 불량시공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의지였다.

포스코는 포항 1기가 가동된 73년 46억원을 시작으로 매년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창립 10년째인 78년 587억원이던 영업이익은 40년째인 2008년 6조5401억원으로 늘었다. 2기부터는 자체자금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설비확장 투자를 진행했다. 92년 10월에는 전남 광양에 세계 최대 단일제철소인 광양제철소를 완공했다. 지난해 말 현재 포스코는 연간 조강생산능력 3110만t으로 세계 4위다. 세계 철강업계에서는 이를 영일만과 광양만의 ‘신화’로 부른다.

78년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은 일본 기미츠제철소를 방문, 이나야마 요시히로 당시 신일본제철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종합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습니까.”

최정욱 기자 jw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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