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교역사의 시작점, 최서단 나가사키를 가다

Է:2010-03-1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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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교역사의 시작점, 최서단 나가사키를 가다

칼도 이겨낸 벽안의 선교사 기도 들리는 듯

일본 최서단 나가사키. 한반도와 가까운 그곳에 한국교회 순례단 400명이 방문했다. 250여년 동안 이어진 일본의 기독교 박해로 이 땅에 피를 흘린 순교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러나 첫날부터 순교지로 향하는 발걸음이 순탄치 않았다. 나가사키에 도착한 지난 8일부터 심하게 바람이 불더니 저녁에는 비까지 내렸다. 이튿날에도 꾸물거리는 날씨 속에서 바람이 불었고, 3일째 되던 날에는 눈발이 날렸다. 하지만 성지에 선 순간, 좀처럼 감 잡을 수 없던 날씨가 잠잠해졌다. 순교지에서 “할렐루야!”라고 외친 첫 기적의 순간이었다.

순례단은 대형버스 8대에 나눠 타고 각각의 성지를 돌아봤다. 히가시 소노기 26인 순교자 승선 유적지를 시작으로 일본 26인 순교자 기념비, 호코바루 순교지, 몸체와 머리 무덤…. 그 옛날 일본 사람들은 잔인하게 크리스천을 처형했다.

1549년 규슈 남단 가고시마에 도착한 가톨릭 예수회 소속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선교사가 일본에 처음 복음을 전했다. 당시 전국시대 패권을 장악했던 오다 노부나가의 도움으로 성도수가 80만명에 이를 정도로 부흥기를 맞았다. 그러나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기독교 금교령으로 일본 기독교는 큰 위기에 빠졌다. 그때 30만명이 넘는 선교사와 성도들이 체포, 추방되거나 순교를 당했다.

1597년 1월 교토와 오사카에서 스페인 출신의 베드로 선교사를 포함, 24명의 크리스천이 체포됐다. 이들은 1월 9일 교토를 출발,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형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누구든 크리스천이라면 이렇게 된다”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쪽 귀와 코를 잘랐다. 한 달여 동안 이들을 감시하던 두 명의 일본인은 생각한다. ‘대체 저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누구기에 이런 모진 고문을 감내한단 말인가.’ 고통 속에서 죽음이 임박했는데도 그들은 천사 같은 미소를 잃지 않았으니 드는 의문이리라. 그런 모습에 감동을 받은 감시원 두 명이 결국 크리스천임을 고백하고 24명과 함께 순교의 길을 걷게 된다.

이들이 처형장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탔던 곳이 바로 히가시 소노기 해변이다. 지금 그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한쪽에서 아쉬운 소리가 들렸다. “누구든 만나면, 그 옛날 순교자의 삶을 전할 텐데…” 순교자들의 종착점에 십자가를 세운 교회가 없다는 게 일본 기독교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26명의 순교자들을 형상화한 기념비가 니시자카 언덕에 세워져 있다. 26명의 순교자 중에는 어린 소년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그 뒤편에는 돌무더기가 있다. 박해를 피해 산속이나 동굴에 숨어 예배를 드렸던 잠복 크리스천들이 십자가를 새긴 돌들이다. 잠시 그곳에서 순례단은 통성으로 기도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듯 일본에 복음의 문이 열리도록….

니시자카 언덕을 떠나 달려간 곳은 오무라 지역이다. 잠복 크리스천까지 색출해 탄압을 가했던 곳이다. 1657년 오무라에서 600명이 넘는 크리스천이 체포돼 5곳에 나뉘어 수감된다. 이들 중 오무라 감옥에 수감된 131명이 호코바루 처형장에서 참수되는데, 이들이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목과 몸을 떼어 따로 묻었다고 한다. 호코바루 순교지에는 기념비와 처형장 전경이 조각되어 있고, 인근에 몸체 무덤과 머리 무덤이 각기 따로 세워져 있다.

크리스천이 0.8%밖에 되지 않는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구교와 신교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이들 순교지가 가톨릭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한국의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만을 위해 순교의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이번 순례기간 중 일본의 한 공무원이 세례를 받았다. 사세보 항에서 뱃길로 40분 정도 떨어진 구로시마 섬에서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복음화율이 낮은 일본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광경이다. 구로시마는 크로스(cross), 즉 십자가란 이름의 섬으로 일본 크리스천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서 지냈던 곳이다. 주민 80%가 크리스천이다.

이곳 구로시마 성당에서 지난 11일 사세보시 관광컨벤션센터 과장인 노다 히로유키(42)씨가 정성진(거룩한빛광성교회) 목사의 집례로 세례를 받았다. 바울이라는 세례명도 얻었다. 노다씨는 1년 전부터 CBS와 함께 한·일연합선교대회를 준비하던 중 신앙에 눈을 떴고, 이날 세례까지 받은 것이다. 그는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며 “아멘으로 화답하는 크리스천으로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본을 떠나는 날, 정 목사를 비롯한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큰 비전을 결단하며 올리브 나무를 일본 땅에 심었다. 박은호(정릉교회) 목사는 “올리브 나무를 심듯 이 땅을 축복하며 겨자씨 한 알 같은 복음의 씨앗을 우리가 뿌렸다”고 말했다.

선교의 불모지 일본, 선교사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일본 땅에서 미국 선교사들은 아예 철수했다. 그러나 1%가 채 안되는 일본의 크리스천들이 이 땅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또 한국교회가 땅 밟기 기도를 하며 이 땅을 섬기고 있다. 한일병합 100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일본을 용서하고 일본과 화해하는 것을 넘어 ‘선교 100년’이라는 소망의 나무를 심었다.

이유는 한 가지다. 순교의 피가 흐르는 나가사키를 넘어 일본 열도가 복음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바로 ‘가깝고도 먼’ 한국의 크리스천이 나선 것이다.

나가사키=글·사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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