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이재열] 사회통합위에 바란다
학술회의 참석차 외국을 여행하며 겪는 즐거운 당혹감 중 하나는 선진국 대접이다. 학술토론뿐 아니라, 뒤풀이 시간에도 한국은 단연 관심의 대상이다. 작년에 슬로바키아에서 만난 헝가리 경제학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꺼내 보이며 한국제품의 기능과 디자인을 칭찬해 마지않았다. 지린성 창춘의 중국 교수는 가전제품과 자동차를 모두 한국산으로 장만했다고 즐거워했고, 방콕에서 만난 태국왕립연구소 연구원은 K-pop에 푹 빠져 동방신기 콘서트에 다녀온 아이 이야기를 하며 한국 대중문화의 역동성에 대해 궁금해했다. 첨단 기술과 성공적인 금융위기 극복, 그리고 한류 열풍이 어우러져 선망의 선진국 이미지를 형성한 것이다.
사회는 낙제점, 정치는 빵점
그러나 정작 발표를 맡은 한국 사회학자에게는 큰 부담이다. 경제와 과학기술의 모범생인 한국이 사실은 사회 점수에서는 낙제점이고, 정치는 거의 빵점에 가깝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계산한 경제사회발전지표에 따르면 OECD 30개국 중 성장 동력이라 할 한국의 산업경쟁력은 12위, 거시경제안정성은 19위 수준이었음에 비해, 사회통합에 관련된 지수들은 최하위에 머물렀다. 최근의 금융위기에서도 한국의 경제성적표는 A학점이었다. 과감한 경제외교와 외환스와핑, 적절한 확대재정 등으로 일찌감치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고 경상수지 흑자는 더 늘었으며, G20 의장국으로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할 위치에 섰다. 그러나 내부를 돌아보면 문제들이 간단치 않다. 사회갈등지수는 OECD 최하위로서 필리핀이나 태국에 버금간다.
세계화의 진전과 기술주기의 단축, 그리고 광범한 탈산업화로 인해 고용 없는 성장과 취업 불안이 소득불평등과 맞물려 사회위험을 확대시켰다. 게다가 전통적인 사회 안전장치였던 가족 결속력은 급속히 해체된 반면, 이를 보완할 공적 복지시스템은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세계 최고수준에 이른 자살률이 이런 사회적 불안을 잘 드러낸다.
성공적인 민주화를 이룬 나라치고는 제도권 정치도 미숙아 상태다. 다양한 사회갈등을 제도화하고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승화시키는 ‘정치’는 간 곳 없고 ‘정쟁’과 멱살잡이가 난무하다 보니, 국회는 국민들에게는 불신, 세계로부터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40여년 전 헌팅턴이 제시한 집정관(praetorian) 테제는 그래서 여전히 흥미롭고 유용하다. 경제성장이 가져오는 사회분화를 수용할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역량이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갈등과 폭력에 휩싸이고 결국은 집정관의 개입을 초래하고 만다는 것이다. 로마시대나 1960년대에는 군대가 집정관 노릇을 했지만, 지금은 노조나 시민단체, 혹은 촛불시위가 그 자리를 점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격차와 불평등 소지 줄여야
갈등을 줄이고 사회통합을 늘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묻지마 성장’ 대신 ‘일자리 창출’형 산업정책으로 격차와 불평등의 소지를 줄이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다양한 사회위험에 대비하는 복지 시스템과 다양한 갈등을 해소할 제도화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다. 전자의 핵심이 촘촘한 사회안전망이라면, 후자의 기초는 제도권 정치의 효과성이다. 결국 지속가능한 발전은 성장과 복지, 그리고 정치의 삼각관계를 어떻게 선순환으로 이끄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얼마 전 만난 필리핀 학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고. 나는 대답했다. 사회통합위원회가 출범했다고. 그래서 부탁한다. 부디 큰 그림을 그려 주기를. 그리고 세계의 우방에게도 모범적 처방을 제시하는 위원회가 되어 주기를.
이재열 사회학과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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