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n & out] 국내 첫 협동조합경영학과 개설 아이쿱생협硏 정원각 사무국장
생협은 소매시장 ‘소금’ 대기업서 장난 못칠 것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15% 선을 유지했다. 밀은 한국인이 쌀 다음으로 많이 소비하는 곡물. 겨울이면 남녘의 농토를 파랗게 물들였던 밀농사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정부 수매가 사라지고 값싼 외국산 밀가루가 밀려들어오자 농부들이 밀농사를 포기한 것이다.
밀농사를 다시 살려낸 것이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이다. 생협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우리밀 소비 운동을 펼쳐왔다. 바닥인 0.2%까지 내려갔던 밀 자급률은 지난해 0.6∼0.7%로 다소 올랐다.
생협은 직거래 방식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해 왔다. 지난해 친환경 농산물 시장 규모는 가공식품을 포함해 6조원 규모로 추산되는데 그 가운데 5000억원 정도가 생협을 통해 유통됐다. 10%도 안 되는 수치지만 그 힘은 작지 않다. 생협 덕분에 친환경 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어음 걱정을 안 한다. 제아무리 큰 유통회사라 해도 이들에게는 현금을 줘야 한다. 생협이 어음 거래를 안 하기 때문이다.
먹을거리에 예민한 소수의 관심사 정도로만 여겨졌던 생협을 연구하는 학과가 생겼다. 성공회대는 이번 봄학기 대학원 과정에 ‘협동조합경영학과’를 개설하고 신입생 8명을 받았다. 국내 첫 협동조합 학과 탄생의 산파가 된 정원각(47) 아이쿱생협연구소 사무국장을 9일 만났다. 1990년부터 생협에 몸 담아온 정씨는 겸임교수 자격으로 한국 생협의 역사 등을 강의한다.
-협동조합을 공부하는 학과라는 게 생소합니다.
“유럽이나 일본 미국 캐나다 등에는 협동조합 관련 학과가 상당히 많아요. 일본만 해도 협동조합 연구자들이 수천명이나 돼요. 지금 우리나라에 생협 조합원이 50만명쯤 돼요. 생협이 뭐고, 생협이 사회 속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된 거죠. 원래 대학에 학과를 만들려고 했는데 인허가 과정이 매우 복잡해 일단 대학원에 개설했습니다. 앞으로 박사 과정도 만들 생각입니다.”
-‘협동조합학과’라고 하지 않고 ‘협동조합경영학과’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협동조합은 정의 상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즉 기업입니다. 그런데 이윤이 아니라 조합원의 이해를 실현하는 기업인 거죠. 기업이기 때문에 경영을 잘 해야 합니다. 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의 많은 생협이 문을 닫았는데, 대부분 경영 실패 때문이었어요. 우리 학과에서는 일반 경영학과에서 가르치는 인사나 노무, 마케팅 등도 가르칩니다.”
협동조합이라면 농협이나 수협, 축협 등 생산자 협동조합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생협은 낯선 단어일 수 있다. 생협은 소비자들이 중심이 된 협동조합이다. 예전에 소비조합, 구매조합, 소비자협동조합 등으로 불리다가 90년대 들어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란 용어로 통일됐다. 80년대 후반부터 농업 생산과 소비에 대한 대안운동으로 확산된 생협은 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상당수가 소멸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현재 한살림, 아이쿱생협연합회, 두레생협 등이 국내 3대 생협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산자 협동조합이 활발하지만 외국은 소비자 협동조합이 중심이다.
“스위스의 소비자협동조합인 코업스위스(Co-op Swiss)는 2008년에 글로벌 유통기업 까르푸의 매장 12개를 인수했어요. 1940년대 한 신부가 시작한 스페인의 몬드라곤협동조합은 현재 200개 이상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대학도 있고 은행도 있어요. 일본의 경우 전체 4800만 가구 중 45%에 해당하는 2200만 가구가 생협 조합원입니다. 스위스나 스웨덴은 거의 모든 가구가 생협에 가입돼 있고요.”
세계 최고 축구 클럽이라는 스페인 FC바르셀로나가 지역 소비자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축구팀이란 걸 아는 이들이 있을까. 정씨는 “다른 축구팀 유니폼에는 광고가 실리지만 FC바르셀로나 유니폼에는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며
“일반 영리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축구팀이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방 구석구석까지 대형 유통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생협이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요?
“대자본 앞에서는 소비자도 생산자도 다 약자가 됩니다. 생협이라는 또 하나의 소매 유통망이 튼튼하게 존재한다면 대자본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생협 때문에 생산자 함부로 못 대하고, 가격 장난 못 치게 할 수 있다는 거죠. 또 생협에서 공정무역이라든가 윤리적 소비를 얘기하니까 대기업들도 그런 것들에 대한 감각이 조금 생긴 거죠. 사회를 부패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게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걸 ‘소금전략’이라고 해요. 바닷물이 3%의 소금으로 썩지 않는 것처럼 소매 유통시장의 3% 정도를 생협이 확보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우리 눈치를 보지 않겠어요?”
-요즘 대형마트 간 최저가 경쟁이 치열합니다. 생협은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적정한 가격’을 확보해 줘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압니다. 가격 경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가격이 저렴한 게 좋죠. 품질을 저하시키지 않고 정량을 지키면서 가격을 낮춘다면 환영이에요. 그런데 소비자를 속인다거나 생산자와 납품업자의 피눈물을 짜는 방법으로 할인경쟁을 하면 안 되는 거죠. 지금 친환경 농산물이나 우리밀 시장에도 대기업들이 들어오고 있어요. 이들은 돈이 되면 시장을 확 키웠다가 상황이 안 좋아지면 금방 떠날 수 있어요. 그러면 농민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 걱정이 항상 있어요.”
생협을 소비공동체로만 보는 건 잘못이다. 생협은 먹을거리 문제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나 교육, 주거, 환경 등 이른바 ‘생활 이슈’에 대해 적극 참여한다. 학교급식운동이나 담배 자판기 철거운동, 러브호텔 반대운동 등은 생협이 주도한 대표적 시민운동 사례. 정씨는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생협이 지방자치 선거 후보를 내세워 대거 당선시키기도 한다. 정씨는 “생협은 민주주의를 훈련하는 생활 조직”이라며 “유럽을 복지국가로 이끌어낸 힘도 생협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힘을 들여 학교운영위원회를 만들어 놨는데, 거기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없어요. 학교급식도 조례를 만드는 건 쉬워요. 그런데 그게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지 검증하고 관리하는 게 안 돼요. 민주주의의 형식이 상당히 갖춰줬지만 그 형식을 채우는 대중이 없어요. 저는 우리 사회가 바로 이런 문제에 걸려 있다고 생각해요.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대중과 대중조직이 없다는 것. 협동조합은 그 정의와 가치, 운용에서 민주주의를 핵심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생협을 통해 민주주의를 훈련한 대중이 길러진다고 보는 거죠.”
생협은 지난해 경기 침체 속에서도 전년 대비 평균 20%가 넘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정씨가 소속된 아이쿱생협연합회의 경우 1998년 633명이던 조합원이 2008년 5만4000명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판매액도 15억원에서 1300억원으로 증가했다.
-서울시내에 생협 매장이 많이 늘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아이쿱에서 TV 광고도 하더군요. 대학에 관련 학과도 생기고. 생협이 또 한번의 부흥기를 맞은 건가요?
“생협은 블루오션이 맞아요. 그렇지만 부흥기라고 보긴 어려워요. 여전히 맹아기, 씨를 뿌리는 단계라고 봐요. 생협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생협이 중산층, 30·40대, 고학력자, 사회의식이 있는 사람들의 조직으로 인식돼 있는 것도 큰 문제예요. 그걸 뛰어넘어 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해요. 그러려면 공급하는 친환경 농산물의 가격도 더 낮춰야 하고.”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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