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CEO 리더십-(8) 연강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 내가 기억하는 연강… 朴대통령에 “NO”라고 말한 꼿꼿함
나는 연강 박두병 회장이 1967년 8월 17일 제6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선임돼 1973년 8월 4일 돌아가실 때까지 대한상공회의소에 근무했다.
상공회의소 회장 시절 그분은 철두철미한 경제·경영철학을 지니고, 개인생활보다는 공인으로서 우리나라의 산업 합리화와 기업의 국제화를 주선했다. 특히 인재 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경제계에 당면한 어려운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항상 중지를 모아 앞을 내다보면서 현명하고 명석한 판단을 내렸다. 또 재계 간의 문제도 중재와 설득을 통해 원만히 처리했다.
공업의 국제화를 위해 국제 민간 외교에 주력하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경제인의 명예인 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 회장에 피선됐다.
당시 우리나라가 경제성장기여서 박 회장은 경제 문제에 관한 박정희 대통령의 자문에 자주 응했는데 그 때마다 업계의 의견과 해결 방안을 준비해 소상히 보고했다. 그러나 개인사업에 대한 청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당시는 내자(內資)가 취약하던 때라 외자 도입으로 거의 모든 공장을 건설하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외자 도입 자체가 곧 특혜였다. 외자 도입 심의위원으로 6년간 겸직하는 동안 결심하기에 따라서는 외자를 빌려 기간산업 등에 진출할 기회가 많았는데 연강의 결벽에 가까운 청렴성은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옆에서 모시는 나로선 나름대로 안타까움이 앞설 때가 수없이 많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범접할 수 없는 그 어른의 꼿꼿한 모습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하루는 박 대통령이 연강을 불러 대뜸 남산 어린이회관을 인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분부를 내렸다. 마침 남산 어린이회관이 어린이대공원으로 옮기게 돼 정부로서도 남산회관을 서둘러 처분해야 할 시기였다.
연강은 평소부터 상의회관이야말로 모든 상공인이 쉽게 자주 왕래할 수 있는 입지(立地)여야 한다고 내세웠던 터라 외국의 예를 들면서 남산회관 위치는 아무래도 적합지 않은 것 같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박 대통령도 연강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요즘 남대문 옆에 번듯이 세워진 국제 규모의 상의회관 옆을 지날 때마다 ‘정중하게 거절하느라 진땀 뺐다’고 말씀하던 그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김현식 전 두산동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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