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역사 바로 세우자-(10) 보건·의료분야 공헌] 서양의술 전파 주도
홍의섭 전 연세대 교수는 기독교가 한국에 끼친 영향은 가히 ‘혁명’에 해당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기독교는 한국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보건·의료 분야는 더욱 그러했다.
개항 이전 한국의 의료실태는 원시상태였다. 경험적 의술의 일종인 한의학 외에는 비과학적 샤머니즘과 관련된 무속신앙과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전 근대적 의료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한의학 가치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외과적 수술은 불가능했다. 당시 조선인의 수명은 남녀 평균 40세 정도에 불과했다. 영아 및 유아사망률도 매우 높았다.
이런 상태에서 기독교는 조선에서 서양의술 전파에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다. 물론 조선에서 서양의술의 유입은 부분적으로 중국과 일본을 통한 전파도 없지 않았지만, 그것도 연원적으로 따지고 보면 기독교적 배경에서 생성된 것이었다.
1876년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은 자국 거류민을 치료하기 위해 부산의 제생의원(1876), 원산의 생생의원(1880), 인천의 영사관 부속병원(1883) 등을 설립했으나, 이런 사례들이 한국에서 서양의학의 도입에 준 영향은 미미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880년대부터 조선의 조야에서 서양의술에 대한 관심이 제기돼 소위 ‘개화상소문(開化上疏文)’에서나 ‘한성순보’ 등에서 서양의술의 도입을 주창한 바 있지만 실제로 시행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내한으로 구체화됐다. 즉 서양의술의 유입은 의료선교사 알렌의 입국으로 시작됐다. 내한한 알렌은 외국 거류민을 위한 공의 자격으로 체류했으나 갑신정변 후 서양의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고, 1885년 4월 10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이 설립된다. 알렌이 외아문독관 김윤식에게 올린 병원설립안에서 환자에 대한 단순한 치료만이 아니라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서양의 의학과 보건학을 가르치는 기관”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병원은 한국에서 서양의술의 유입과 전파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곧 서울에 시(施)병원과 여성만을 위한 병원인 보구녀관(保救女館)이 설립됐고, 여러 선교부에 의한 병원 설립이 확산됐다.
부산에는 전킨기념병원(1891), 평양에는 래드병원(평양기독병원, 1893)과 기홀병원(1897)이 설립됐다. 또 원산 구세병원(1896), 대구 제중원(동산기독병원, 1897), 전주 예수병원(1898), 선천 미동병원(1901), 청주 던칸기념병원(1903), 개성 아이베이병원(1907), 함흥 제혜병원(1908), 강계 게례지병원(1909), 그리고 진주 배돈병원(1913) 등이 세워졌다. 1913년까지 전국적으로 3개의 진료소를 포함해 33개의 기독교 선교병원이 설립됐다.
기독교 의료활동 중 가장 감동적인 일은 1910년을 전후해 대구와 부산, 광주에 나병원을 설립하고 이들에게 베푼 자애봉사였을 것이다. 당시 나병을 ‘천형병(天刑病)’이라 불렀던 사실에서 이들이 당한 수난과 고통을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교회가 설립한 병원들이 우리나라 의료 보건활동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당시 의료상황에서 선교병원의 의료활동은 절대적이었다. 시설, 장비, 의료진 등을 고려해볼 때 더욱 그러했다.
의학교육 분야에서도 기독교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관립의학교가 없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교육은 제중원에서 시작되었고, 제중원 의학교는 서양의학 교육의 효시였다. 여기서 한국인 의사들이 배출됐다. 물론 초기 외국에서 의학교육을 받고 귀국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조선 정부에 의해 일본에서 의학교육을 받은 이들 외에는 교회나 선교사의 후원으로 미국에서 의학교육을 받았다. 서재필 김점동 박에스더 오긍선 등이 바로 그들이다. 특히 제중원에 있던 에비슨의 의학교육과 의학교재의 역간·편찬은 한국 의료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1891년 내한한 첫 간호(선교)사는 히트코트였다. 4년 뒤에는 제이콥슨, 1897년에는 쉴즈가 내한해 간호교육을 시행, 간호사 양성을 주도했다. 쉴즈를 ‘한국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렀던 것은 과분한 찬사가 아니었다. 1938년 당시 주한 의료선교사 수는 328명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의 의료활동은 1830년대 이후 서구의 기독교 선교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이때를 전후해 남자만 아니라 여성도, 목사만 아니라 전문인도, 복음전도만 아니라 의료활동도 선교의 중요한 도구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인간의 질병과 고통에 대한 기독교적 자애와 사랑은 우리나라의 환경 개선, 위생 및 보건 증진, 의료 및 의학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전종휘 박사는 기독교의 의료활동은 선교부 간의 연합적 의료활동, 여성 의료진의 봉사, 콜레라나 두창 등 전염병에 대한 적절한 대처, 의사 및 간호사의 양성, 만성 전염병(나병과 결핵) 환자를 위한 요양시설의 건립과 보호, 그리고 보건교육의 실시를 통해 한국사회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상규 고신대 역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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