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실서 콕핏으로… 더 넓은 하늘을 날다… 아스타항공 기장 이혜정

Է:2010-03-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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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서 콕핏으로… 더 넓은 하늘을 날다… 아스타항공 기장 이혜정

여객기 조종석 최초 동승 인터뷰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국제민간항공협약은 일반인의 여객기 조종실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 항공사 판단에 따라 허용한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이를 허용한 항공사는 거의 없다. 그 틈을 비집고 김포에서 제주까지 50분간 저비용 항공사 이스타항공의 보잉 737NG 여객기 조종실에 탔다. 스튜어디스에서 조종사로 변신한 이혜정(42) 기장과의 콕핏(cockpit·조종석) 인터뷰는 어렵게 성사됐다.



스튜어디스에서 조종사로

2일 낮 12시, 서울 방화동 이스타항공 사옥에서 이 기장을 만났다. 객실에서 승객을 맞이하던 승무원 출신이다. “안녕하세요.” 부드러우리란 예상은 가볍게 빗나갔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중저음 목소리. “입 다물면 여자, 입 열면 남잡니다. 하하하.” 웃음소리는 완전히 ‘장군감’이다.

이 기장은 경희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어려서는 남자들과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즐겼다고 한다. 대학생 때 스키를 배운 첫날 최상급자 코스에 올라갔다. 겁이 없다. 역시 이런 여성만 금녀(禁女)의 벽을 넘을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아요. 남자는 70∼80%가 조종에 적합한 성격이고 여자는 50% 정도라는데, 일단 그 안에만 들면 성별 차이는 없어요. 조종을 힘으로 합니까? 힘으로는 천하장사도 비행기 못 움직이죠.”

조종사는 부기장과 기장, 달랑 두 단계뿐이다. 누굴 제치고 이겨야 하는 경쟁구조가 아니다. 제 할 일만 해내면 된다. 오히려 여성에게 유리한 직업이란 느낌마저 준다.

“애 키우는 게 좀 힘들어요.” 근무 스케줄이 일정치 않아 아들(8)과 딸(5)을 키우기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시어머니 도움을 받고 있다. 그래도 다른 직장 여성보다는 사정이 낫다. 평일에 쉬는 날이 많고 미리 얘기만 하면 스케줄도 조정할 수 있다.

사무실에서 김포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 계류장에 도착한 그는 빨간 점퍼를 입고 야광띠를 두른 채 우선 기체 외부를 점검했다. 엔진, 바퀴, 동체 외관을 꼼꼼히 살피곤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들어오시죠.” 조종실 문이 열렸다.

절대 출입금지 구역

이스타항공에는 프로펠러기가 없다. 모든 비행기는 보잉 737NG 제트여객기다. 승무원 포함해 150명까지 탄다. 조종석은 1평(3.3㎡)이 채 안 돼 보였다. 이 기장과 오병우(43) 부기장이 앉으니 꽉 찬다. 한 사람 더 들어갈 공간이 있을까 싶은데 문 옆 벽에서 의자를 펴 내린다.

눈앞에 활주로가 펼쳐지리란 예상과 달리 눈높이까지 계기판이 가득하다. 앞을 보려면 의자를 높이고 허리를 곧추세워야 했다. “9·11테러 이후 일반인 태우는 건 처음이에요. 1만 피트(약 3000m) 넘어설 때까진 말 하시면 안 됩니다.” 이 기장이 주의를 준 뒤 직접 조종하지 않고 관찰만 하는 관숙비행 탑승자 숙지사항을 설명했다.

“관숙비행 브리핑 시작합니다. 오른쪽 빨간 레버를 당기면 산소마스크가 나옵니다. 비상탈출 땐 일어나서 조종실 문 열고 제일 먼저 나가면 됩니다. 화재로 문이 뜨거우면 부기장쪽 창문으로 탈출합니다. 부기장이 먼저 나가고 두 번째로 나갑니다. 왼다리부터 창밖으로 내고, 비상로프 잡고 나가세요.”

엔진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렸다. 양 날개 아래 엔진을 이용해 활주로에 진입했다. “클리어 포 테이크 오프(Clear for takeoff).” 관제탑에서 이륙 허가가 떨어졌다.

이 기장이 오른손으로 스로틀 레버(자동차로 치면 액셀러레이터)를 앞으로 죽 밀자 비행기가 속도를 높인다. 탁 트인 활주로가 빠르게 앞 창문을 지나 옆 창문을 스쳐 지나갔다. 시속 200㎞가 되자 부기장이 외친다. “로테이트(rotate·조종간을 들어올리라는 뜻).” 이 기장이 조종간을 당겨 올렸다. 창 밖에 하얀 구름이 가득 찼다.



하늘에서

고도계 숫자는 빠르게 올라갔다. 이륙 후 1만 피트까지는 ‘비행중요단계’다. 조종사들도 비행 외적인 대화는 절대 하지 않는다. 1만 피트를 넘어선 뒤에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한 채 잠자코 기다렸다. 목표 고도 2만8000피트에 이르러서야 긴장이 서서히 풀린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여객기 조종사에겐 그저 지루한 일터이지 않을까. “비행은 항상 달라서 재밌어요. 매번 날씨 시간 조건이 다 달라요. 늘 공부해야 하죠.” 이 기장은 내리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불투명 플라스틱을 유리창에 덧댔다.

“갈 때 올 때 부기장과 번갈아 운전하는데 제가 저경력 기장(이날까지 기장 경력 30시간)이라 100시간 될 때까지는 전부 제가 운전해요. 실력을 빨리 향상시키라는 의미죠. (오 부기장을 쳐다보며) 서울 갈 땐 부기장님이 운전하실래요?” “싫습니다. 하하.” 긴장감이 사라지자 조종석은 화기애애해졌다.

여성 기장과 남성 기장은 다른 게 있을까? “기술적으로 전혀 차이가 없어요. 남성 기장과 차이라면 분위기가 좀 더 좋은 정도랄까요.” 오 부기장이 웃으며 답했다.

멀리 앞서 가는 비행기 꼬리가 보인다. “군산을 지나고 있는데, 날씨 좋을 땐 여기서 한라산도 보여요.” 이날은 구름이 잔뜩 끼어 하늘의 푸른색도 잘 보이지 않았다.

승무원과 조종사는 전혀 다른 직업이다. “아시아나항공에서 승무원 생활을 시작(1991년 11월)했는데 신생사라서 4년쯤 지나니 사무장이 됐어요. 더 올라갈 데가 없더군요. 조종이 재밌어 보였어요. 95년 회사에서 조종훈련생 모집 공고가 났기에 혹시나 하고 원서를 냈죠. 인사과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아시아나항공은 이씨 원서를 받고 고민하다 여자 훈련생을 뽑기로 결정했다. 이씨를 포함해 여성 2명이 선발됐다. 미국 텍사스 조종학교 훈련을 거쳐 97년 9월부터 아시아나에서 부기장으로 일했다. 보잉 737과 747 조종면허를 갖고 있으며 총 6100시간 무사고 운항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으로 옮긴 건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민항기) 여자 조종사라고…볼 수…있을 거예요.” 당시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은 먼저 여자 조종사를 배출하려고 경쟁했다. 며칠 차이로 이씨가 먼저 조종사 면허를 땄다고 한다. “양사가 서로 먼저라고 주장했죠.”(대한항공은 자사 신수진 기장이 이 기장보다 3개월 먼저 민항기 첫 여성 조종사가 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3일 이씨는 국토해양부 항공안전본부 기장 자격 심사를 통과해 부기장에서 기장으로 올라섰다. 스튜어디스 출신으로는 처음 여성 기장이 된 것이다. 그 전에는 대한항공에만 여성 기장 3명이 있었다.



착륙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금세 제주도 근방이다. 다시 고도를 낮추면서 귀가 멍멍해졌다. 고도 1만 피트까지 내려가자 이 기장이 안전벨트를 맸다. 햇빛을 가리던 플라스틱도 뗐다. 기내 안내방송이 나간다. “착륙 준비 중입니다. 사용하시던 전자기기 전원을 꺼주십시오.”

이 기장 귓속엔 5개 채널에서 정보가 들어오고 있었다. 관제탑, 승무원, 지상직원과 통신하고 승무원의 객실방송도 모니터한다. 비상주파수도 열어두고 있다. 관제탑 채널에선 앞 뒤 비행기 너댓 대가 관제탑과 나누는 대화까지 흘러나온다. 다른 비행기 상황도 알아야 하기 때문. 헤드셋을 차고 함께 듣고 있자니 정신이 없다. 두 눈은 방향계와 고도계를 번갈아 점검한다. 이 기장은 “산만한 성격이 조종에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고도 3600피트(약 1000m)에서 비행기는 활주로와 일직선이 됐다. 이대로 천천히 활주로에 내려앉으면 된다. 2660피트가 되자 랜딩기어를 내렸다. 바닥에서 묵직한 진동이 느껴진다. 1800피트에서 이 기장은 선글라스를 벗었다. 빗물이 앞창을 때리기 시작하자 자동차처럼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원 사우전(one thousand·고도 1000피트라는 뜻).” 부기장이 외쳤다. 그제야 제주 시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도 300피트까지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기수를 돌려야 한다. 이 기장 손놀림이 분주해지면서 활주로가 시야 한가득 들어왔다.

고도 600피트에서 자동운전 모드를 수동으로 바꿨다. 경고음이 크게 울리며 붉은 사이렌이 수차례 깜박인다. “어프로치 미니멈(approach minimum·고도 400피트).” “미니멈(고도 300피트).” “피프티 피츠(fifty feets·고도 50피트라는 뜻), 포티 피츠… 텐 피츠.” 고도하강을 알리는 기계음이 귀를 찌른다. 쿵, 바퀴가 활주로에 닿았다.

가장(家長)이 된 기분

비행기가 계류장에 안전하게 섰다. 조종사에겐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 “신체조건이 좋아야죠. 그리고… 제가 전자오락을 정말 잘하거든요.” 조금 전 수많은 버튼과 계기판 위를 넘나들던 이 기장의 현란한 손놀림이 떠올랐다. “겁이 많아 운전도 못하는 경우만 아니면 여자도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는 여성 기장의 장점으로 소통 능력을 꼽았다. “지금은 다 자동화됐어요. 기계 스스로 착륙도 잘해요. 이륙만 기계가 못하죠. 그래서 기장 역할이 관리로 바뀌었어요. 예전엔 기장이 다 알아서 결정했지만 이젠 부기장이나 승무원과 의논하죠. 그런 점에서 여기장이 더 유리할 수 있어요.”

기장이 되는 건 모든 조종사의 꿈이라고 한다. 40대 초반에 꿈을 이룬 기분이 궁금했다. “승객과 승무원 목숨이 내 어깨에 달려 있구나 하는 느낌이에요. 가장이 된 기분이랄까. 기술적으론 부기장 생활을 오래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오른쪽에서 하던 운전을 왼쪽에서 하는 정도죠.”

긴장했던 탓인지 피로감이 상당했다. 이 기장은 보통 하루 네 차례(왕복 두 번) 비행한다. 착륙했다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바로 이륙하는 식이다. 이렇게 2∼3일 근무하고 하루 쉰다. 한 달에 열흘 정도 휴무다.

스튜어디스가 조종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승객이 다 내렸다는 뜻이다. 바로 출발 준비가 시작됐다. 이 기장은 다시 빨간 점퍼와 야광띠를 두른 채 밖으로 나갔다. 기장은 반드시 외부 점검을 해야 한다. 15분 뒤 이 기장이 다시 조종석에 앉은 비행기는 김포를 향해 날아올랐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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