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명절의 분노

Է:2010-02-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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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한용운 시인의 ‘나룻배와 행인’ 한 구절이다. 일제 강점기를 감안하면 민족적 차원의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일단 외견상으로 봐서 나룻배와 행인 중 어느 쪽이 여성일까. 기성세대는 당연히 나룻배가 여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요즘 중학생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나룻배가 남성이라고 답한단다.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KBS2 TV 오락프로 ‘개그콘서트’ 인기코너 가운데 ‘남성인권보장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여성을 떠받들며 살아야 하는 남성들의 애환을 코믹하게 그려 폭소를 자아낸다. 관계의 존속 여부를 비롯해 모든 결정권을 여성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남성은 그저 여성의 비위를 맞추느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이런 개그프로가 웃음을 주는 것은 대다수가 공감한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마치 결혼 전에 들인 공(?)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남성들은 권한을 되찾는다.

얼마 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주최 세미나에서는 맞벌이 가정에서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남편의 7배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돈은 똑같이 버는데 가정 일은 여성이 도맡아 한다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명절은 남성중심주의의 결정판이다. 여자는 죄다 부엌으로 몰아넣고 안방이며 거실은 남자들 차지다. 차례를 지내고 식사가 끝나면 여자들은 다시 부엌으로 원위치하고 남자들은 느긋하게 과일과 커피를 즐긴다. 여성들의 명절 고난은 육체노동에 그치지 않는다. 시아주버니며 당숙 어른에게 반가운 척 인사를 하려니 억지로 웃음을 띠는 감정노동까지 병행해야 한다.

올해도 영락없이 시댁에서 설을 쇠고 온 이 땅의 며느리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남편이 ‘남의 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느니, 여자는 그저 부엌용 도우미라느니, 내가 왜 피한방울 안 섞인 시댁 식구들을 그렇게 챙겨야 하느냐는 등. 실제로 명절 직후 이혼하는 부부가 늘어난다고 한다. 오죽 싫으면 직장 가진 여성은 명절에 당직근무를 자청할까.

개그코너는 이런 구호로 마무리한다. “여성들이 밥을 사는 그날까지 남성들이여 일어나라!” 결혼 후 상황에서는 여성들이 이렇게 외쳐야 할 것 같다. “남성들이 앞치마를 두르는 그날까지 여성들이여 일어나라!”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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