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n&Out] 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요리사 박효남

Է:2010-02-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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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In&Out] 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요리사 박효남

“외국 정상들도 매운 비빔밥 찾더군요”

그는 국내 최고의 프랑스요리 전문가로 꼽힌다. 한국 요리사 최초로 프랑스 정부 농업공로훈장 ‘메리트 아그리콜’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한식 만찬을 차려냈다. 외국 정상을 손님으로 모셔놓고. 지난달 28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한국의 밤’ 행사 만찬을 진두지휘한 박효남(49)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 총주방장(상무) 얘기다.

왜 프랑스음식 요리사가 ‘엉뚱하게’ 한식 만찬을 맡았을까. 지난 3일 귀국한 박씨를 9일 서울힐튼호텔에서 만나 물었다.

“우리 음식을 서양 사람들에게 들고 가는 방법을 제가 안다는 것이겠죠, 아마. 제가 프랑스 음식을 30년 하면서 서양 사람들의 음식문화를 잘 아니까요. 이번 만찬에 한식 주방장들이 많이 갔어요. 그 분들과 같이 메뉴를 구상해서 음식을 만들었죠. 저는 그걸 연출한 거예요. 한식도 서양음식처럼 예쁘고 깔끔한 느낌을 주도록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거죠.”

말하자면 요리사가 아니라 연출자였다. 그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고, 우리 상품이 세계 1등도 많은데 우리 음식이 거기에 못 미치는 건 외국으로 표출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중국 음식, 일본 음식, 프랑스 음식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 음식도 있다는 걸 세계에 보여주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테이스트 오브 그린(Taste of Green). 박씨가 연출한 ‘한국의 밤’ 만찬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말이다. 그는 “채소 위주의 한국 음식이 가진 푸르고 친환경적 특성을 보여주기 위해 ‘자연의 맛’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했다.

그날 만찬은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이어졌다. 각국 정상을 포함해 외국인 800여명이 만찬장을 찾았다. 박씨는 한국 요리사 7명과 함께 22가지 한식을 차려냈다. 갈비꼬치구이, 닭강정, 전복보쌈김치, 황제김치, 떡갈비, 은대구된장조림 등이다. 3개월 전부터 박씨와 요리사들이 모여 만들어 보고 먹어 보면서 찾아낸 메뉴들이었다.

산채비빔밥도 메뉴에 포함됐다. 박씨는 비빔밥을 두 가지로 준비했다고 한다. 매운맛과 안 매운맛. 외국인들은 매운 걸 좋아하지 않으리라 생각해 대비책을 세워둔 것이다. 그런데 외국 손님 10명 중 8명은 우리가 평소 먹는 그대로 고추장을 넣어 비비는 매운 비빔밥을 선택했다. 박씨는 “깜짝 놀랐다”며 “한식의 매운맛이 외국에서 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치치즈크로켓도 만찬에 올렸다. 그는 “누구는 그게 한식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저는 김치의 맛을 알리기 위해서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치즈와 크로켓을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산채비빔밥이 우리 음식을 우리 식대로 내놓은 거라면, 김치치즈크로켓은 외국인 눈높이로 우리 음식을 변형해 제시한 것이다. 둘 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긴 만찬이 끝난 후, 이명박 대통령은 요리사들을 불러 치하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윤옥 여사도 “마음을 담은 정(情)의 음식이었다”며 “고생 많이 했다”고 격려했다.

프랑스 음식 요리사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박씨는 한국 식재료와 메뉴의 우수성을 누구보다 확신한다. “우리나라 음식을 맛보면 누구나 다 좋아한다”는 것이다. 특히 장맛을 높게 평가해 자신이 만드는 프랑스 요리에도 간장이나 고추장을 소스로 사용하고 있다.

“외국 주방장들이 서울에 오면 일반 한국 음식점에 데려가는데 다들 좋아해요. 이번 다보스포럼 만찬에서도 ‘한국 음식이 웰빙이다’ ‘새로운 웰빙 음식이 나타났다’ 그랬어요. 거기 온 사람들이 세계 각국 음식을 다 접한 사람들인데 그렇게 평가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우리 것은 우수하고 우리 식대로 외국인들도 먹어야 한다는 태도에는 반대한다. 한식을 세계인에게 제시하는 방법은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매운 비빔밥과 안 매운 비빔밥을 따로 준비한 이유, 김치로 김치치즈크로켓을 만든 이유가 거기 있다.

“그 나라 시장에 맞게, 그 나라 사람들에게 맞게 접근해야죠. 반찬이나 찌개를 여럿이 같이 먹는 걸 외국인들이 비위생적이라고 본다면, 1인분씩 따로 먹을 수 있게 해서 나가야죠. 한상차림, 이게 한식이야, 그렇게 고집하면 그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한식 세계화는 한식 하는 사람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한식과 양식이 같이 힘을 합쳐야 세계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음식과 서양 사람을 조화시키는 지점에서 한식 세계화의 답이 나올 거라는 의미다. “음식만 알려서 될 일이 아니고 음식문화를 같이 알려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외국 항공기를 이용했는데, 점심에 김치를 서빙하더군요. 주위를 보니 외국 사람들이 다 김치를 먹어요. 저녁에도 기내식으로 김치를 주는데, 이번에는 거의 안 먹더라고요. 왜 그런가 봤더니, 서양인들은 김치를 샐러드인 줄 알고 먹었던 거예요. 김치를 샐러드로 먹으면 느낌이 별로 안 좋죠. 그래서 저녁에는 안 먹은 거예요. 김치는 샐러드가 아니고 밥이랑 같이 먹는 반찬임을 알려줘야 했는데, 그걸 안 한거죠.”

한식 세계화는 복잡하고 먼 길일 수밖에 없다. 누가 주도해서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그는 “1년, 2년 해서 되는 게 아니고 10년이 됐든, 20년이 됐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해야죠. 일식 중식도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잖아요?”라고 충고했다.

박씨는 서울힐튼에서 주방 식구 150명을 이끌고 있다. 18세에 요리에 입문해 1983년 서울힐튼 설립과 함께 주방에 들어와 99년 38세의 나이로 이사가 됐고, 2001년에는 외국계 호텔 총주방장 자리에 오른 첫 한국인이 됐다. 유학 경력도 없는, 시골소년 같은 수줍은 성격의 박씨가 주방에서 쌓은 이력은 놀랍다. 주방 직원들에게 제일 강조하는 말이 무언지 물어봤다.

“요리를 하면서 누구한테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먹을 것처럼 하라고 합니다.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 음식을 내가 만든다고 생각하라고. 누구한테 준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정성이 덜 들어가요. 음식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정성이 더 중요해요.”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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