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총리 할 만합니까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총리의 역할은 애매모호하다. 내각책임제 국가의 경우 실질적 국가수반이고,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선 내각 구성권을 갖고 내정을 주도하지만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전형이랄 수 있는 미국은 총리가 없다. 우리 헌법엔 총리의 권한을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統轄)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대통령 부럽지 않은 권력이다. 그래서 아직도 관(官)이 민(民) 위에 있다고 여기는 봉건적 사고에 젖은 사람들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일컫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도 그럴까. 초대 이범석에서 40대 정운찬에 이르기까지 국민에게 각인된 역대 총리들의 이미지는 대동소이하다. ‘실세총리’ ‘책임총리’로 불리며 독자 목소리를 내려 한 이도 더러 있었으나 예외 없이 양질호피(羊質虎皮)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참모진이 써준 답변서를 국회에서 읽거나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 B급 국가 행사에서 치사나 대독하는 고위 공직자, 총리의 굳어진 이미지다. 좀 튈라치면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처럼 가차 없이 잘리는 자리가 대한민국 총리다. 폼 나고, 언론의 조명을 받는 자리는 늘 대통령 몫이다. 지금까지 리더형보다 참모형 총리가 훨씬 많은 까닭도 이 때문인 듯싶다. 박정희의 유고로 ‘얼굴대통령’에 옹립됐다 8개월 만에 수하들에게 밀려난 최규하를 제외하고 총리를 지낸 수십 명 가운데 대통령에 당선된 예가 없는 것을 봐도 총리는 대권과 인연이 멀다.
총리는 스스로 운신의 폭을 제약한다. 언제나 한 발짝 대통령 뒤에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바뀔 때 반짝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다가 곧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일쑤다. 총리실 전담 기자를 두지 않는 언론사도 꽤 있다. 뉴스 가치가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총리 역할을 얘기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되는 꼭 하나가 있다. 희생양 역할이다. 국면을 전환할 때 써먹기 안성맞춤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두 번째 총리로 교수 정운찬을 선택했다. “서울대 총장 재임 시 뛰어난 조직관리 성과를 보여줬으며, 특유의 친화력과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국정 과제를 추진함에 있어서 포용과 화합의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당시 공식 브리핑한 인선 배경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바람대로 된 것 같지는 않다. 취임도 하기 전에 세종시 수정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더니, 인사청문회에서는 병역 회피, 세금 탈루, 부인 위장전입 의혹 등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해 ‘양파껍질’이란 불명예를 얻었다. 국회에선 인간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군 731부대를 ‘항일독립군’이라고 해서 스타일을 구겼다. 또 “행정부처가 이전하면 나라가 거덜난다”는 불필요한 발언으로 충청민심을 자극했고, 고 이용삼 의원 빈소에선 안 하느니만 못한 문상으로 망신살이 제대로 뻗쳤다. 서울대 총장까지 지낸 분의 상식과 역사 인식에 실망하고, 무성의에 뿔난 사람이 적잖다. 수신(修身)이 있은 뒤에 치국(治國)이 있고 평천하(平天下)가 있는 법이다.
정 총리는 약속과 신뢰를 최고의 가치로 치는 사람이다. 자서전 ‘가슴으로 생각하라’에 따르면 그렇다.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약속이다. 이익이 되면 지키고 상황이 바뀌었다고 지키지 않는다면 그건 약속이 아니다. 유리할 때는 지키고, 불리할 때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원칙도 소신도 아니다. 국가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 총리 논리에 그대로 대입하면 세종시 수정안은 무원칙, 무소신의 결정(結晶)인 셈이다.
그는 ‘세종시 총리’로 불리는 걸 무척 싫어한다. 정 총리는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겠지만 세종시에는 20%밖에 힘을 안 쏟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자신감을 갖는 건 좋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게 아닌지 저어된다. 힘에 부치면 뒤에만 있지 말고 앞에 나서 달라고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마다않는 것도 총리의 역할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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