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그대들의 딸을 위해

Է:2010-01-1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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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김혜림] 그대들의 딸을 위해

요 며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만물유전(萬物流轉)’의 헤라클레이토스를 떠올리며 보냈다. 깊게 생각하며 사는 스타일도 아닌데 고대 그리스 철학자를 떠올린 것은 한 설문조사 결과 때문이다.

육아정책연구소는 지난주 임신한 부모들이 아들보다 딸을 바라는 비율이 높다고 발표했다. 2008년 4∼7월 출생한 2077 신생아 가구의 어머니를 조사했는데, 딸을 바라는 이(37.9%)가 아들을 기다리는 이(31.3%)보다 많았다고. 나머지(30.7%)는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아버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딸이길 바라는 아버지(37.4%)가 제일 많았고, 아들이길 원한 이는 28.6%였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시나브로 사라져 우리나라 임산부들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딸들의 대부분은 환영받으며 태어나 오빠나 남동생에게 차별받지 않고 자라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걱정이다. 무슨 소리냐고?

그동안 탯줄 자를 때부터 ‘에이그’ 바람 빠지는 소리 듣고, 으레 오빠 남동생 먼저인 가정에서 자랐던 예전의 딸들은 강했다. 그래서 살다가 유리 천장에 부딪쳐도 ‘세상이란 원래 이런 것’ 하며 다시 일어섰다. 그런데 차별을 모르고 자라나는 딸들은 어떨까.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걱정이 지나치다고?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환대받은 경험이 없는 여자 선배의 노파심이었으면 좋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닌 성싶다. 바뀌는 세상에 속도를 더해줘야 할 만한 분들이 오히려 브레이크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부가 최근 대통령에게 한 2010년 업무보고에 여성분야 국격(國格) 제고란 항목이 있었다. 국가 경제력이나 국가 신인도에 비해 매우 낮은 국제 성 평등 지수(GEM, GGI)를 제고하기 위해 ‘국가 성 평등 지표’를 개발·관리하겠다는 것이었다.

2009년 여성권한척도(GEM)는 109개국 중 61위, 성 격차 지수(GGI)는 134개국 중 115위였다. 국가 경제력 및 신인도가 10위권인 우리 나라가 유독 여성 분야에서 초라한 성적을 내는 이유는 저조한 여성 정치참여율 때문이다. 여성의 정치 참여율을 높이는 것은 국격 제고에도 필수지만 여성지위 향상의 지름길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또 나 몰라라 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010 지방선거 제도개선안 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 지역구마다 여성을 1명 이상 추천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벌칙을 주기로 한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 안에서 벌칙규정을 제외했다. 여성계는 “벌칙이 없다면 어느 당이 지키겠느냐”며 “국회는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와 평등정치 실현에 의지가 없다”고 맹비난했다.

정부도 입법부와 다를 바 없었다. 여성부는 3월 여성가족부로 바뀐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 가족과 청소년 업무를 넘겨받아 지금보다는 꽤 모양새를 갖출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어림없다.

백희영 여성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여성인력이 출산과 육아문제로 일과 가정을 양자택일해야 하는 환경이 계속된다면 국가적 과제 중 하나인 저출산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누구나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말이 허언(虛言)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보육이 여성부로 와야 한다. 그러나 이번 정부조직개편에서 보육의 이양은 처음부터 논외였다.

아들보다 딸을 낳고 싶어하는 아버지들이여. ‘2등 시민’이 아닌 시민으로 자란 딸들이 유리천장에 부딪혀 힘없이 떨어지는 일을 보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프겠는가.

그대들이 사랑하는 딸들을 위해서라도 세상을 제대로 바꾸는 데 힘을 보태시라. 예컨대 어렵사리 빼낸 군가산점제 같은 ‘전봇대’를 딸들의 출발선에 다시 박는 일 따위는 하지 마시고, 선거 때마다 각 당 및 후보자의 여성정책을 살펴 투표하심이 어떨지.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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