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무연고인사
고려와 조선시대 관리들은 출신지나 연고가 있는 지역에 부임하지 못했다. 또 일정 범위 이내의 본가와 처가, 외가의 친인척은 같은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었다. 권력의 집중과 전횡, 부패를 막기 위해 법으로 만든 상피(相避)제도 때문이다. 상피제는 중국 송나라의 회피(回避)제도를 본뜬 것으로, 고려 선종 9년(1092년)에 도입돼 조선 후기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조선의 상피법은 경국대전 이전(吏典)에 대상이 구체적으로 적시돼있을 정도로 표면적으론 매우 엄격했다. 상이 났을 경우 아홉 달 동안 상복을 입는 친가의 대공친(大功親), 석 달 동안 상복을 입는 외가의 시마친과 사위, 손녀사위, 매부와 자형, 장인, 장인의 아버지, 처남, 동서 등 웬만한 친인척은 모두 상피 대상에 포함시켰다. 국가나 지방의 행정이 사감(私感)에 의해 좌우되거나 토착비리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한 것이다.
국세청은 연초 초임 세무서장 22명을 인사발령하면서 향피(鄕避)제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19명은 출신도가 아닌 지역에, 출신도로 발령 난 3명도 무연고지에 배치됐다. 향피제는 공무원을 무연고 지역에 배치하는 점에선 유사하나 다른 제한규정이 없어 상피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향피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3대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검찰, 경찰, 국세청의 연고지 근무 관행에 쐐기를 박고 난 후 나타난 신풍속도로 지방자치단체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지자체 공무원 1980명을 상호교류토록 하기 위해 지방공무원법 등 관련법을 3월까지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인사교류대상은 인사 감사 예산 세무 회계 건축 등 비리에 취약하거나 민원이 많은 알짜배기 부서 4∼6급 책임자와 실무자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람은 학원가까지 불어 대입 정시모집 입학사정관 전형에 향피제를 도입한 대학도 생겨났다. 서울 모 대학은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전형시 지원자의 학교, 지역과 입학사정관의 출신 지역을 달리하도록 했다.
향피제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도 시행됐으나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공무원들의 반발이 걸림돌이었다. 향피제를 시행할 경우 지역연고에 얽매이지 않아 토착비리를 근절할 수 있고, 법을 엄정하게 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지역 사정에 어두워 겉핥기 행정·사정에 그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원거리 출퇴근과 자녀교육 등의 문제로 해당 공무원들의 불만이 벌써부터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어떤 개혁이든 개혁에는 진통이 따르는 법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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