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없는 사법부] (하) 억울함 풀지못한 피해자 유족들
소멸시효·허송세월 재심… 아직도 먼 명예회복
엄혹한 정치·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무고한 희생을 당했지만 국가의 외면을 받는 사람들은 아직도 허다하다. 한국전쟁 전후 좌익으로 몰려 재판도 없이 학살당한 양민과 고문 탓에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했지만 대신 재심을 청구할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또 억울함을 풀기 위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재심 개시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져 피해자·유족들의 억장은 무너진다.
◇소멸시효에 발목 잡힌 손해배상=울산보도연맹사건 유족들은 3월로 예상되는 대법원 선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가를 상대로 낸 115억여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 결과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1950년 8월 경남 울산군에서 국민보도연맹원과 좌익혐의자 870여명이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 CIC부대와 울산경찰서 경찰관들에 의해 총살된 사건이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가 이를 불법처형 사건으로 결정한 뒤 유족들은 2008년 소송을 냈다. 재판 쟁점은 손해배상 청구권이 사라지는 기간인 소멸시효가 지났는지에 대한 판단이었다.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동안 또는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동안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소멸되도록 정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처형자 명부를 은폐한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유족들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국가의 시효소멸 주장이 권리 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4건의 민간인 집단학살사건 유족들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소멸시효 탓에 패소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오원록 상임대표는 17일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법이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유족들은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가족 없으면 재심 청구도 못해=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을 지내다 67년 귀순한 뒤 간첩으로 몰려 69년 사형당한 이수근씨는 재심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사망할 경우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에 한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자격을 주지만 이씨에게는 가까운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탈출을 도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처조카 배경옥(72)씨는 20년형으로 감형돼 89년 만기출소한 뒤 진실위 진실 규명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심 재판부는 배씨 재심과정에서 이씨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당시 판결이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현행법 탓에 이씨 사건의 재심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무런 증거 없이 간첩으로 몰린 뒤 58년 기소돼 이듬해 사형당한 독립운동가이자 유력정치가였던 죽산 조봉암 선생의 유족은 진실위 재심 권고 결정을 토대로 2008년 8월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8년 9월 사법부 60년 기념식에서 “과거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는 가장 원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재심절차를 거치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봉암 선생의 재심은 대법원이 처음 판단하는 과거사 관련 사건이라 사법부의 과거사 반성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