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탄생 100주년…굿모닝! 李箱-(중) 멜론을 먹고싶소] 이상의 데드마스크는 어디에… 화가 길진섭이 떠서 월북 때 가져갔을 것

Է:2010-01-1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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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탄생 100주년…굿모닝! 李箱-(중) 멜론을 먹고싶소] 이상의 데드마스크는 어디에… 화가 길진섭이 떠서 월북 때 가져갔을 것

이상의 데드마스크는 존재하는가.

도쿄미술학교를 나와 일본에서 체류하던 서양화가 길진섭(1907∼75)은 이상이 숨진 직후 데드마스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에 듬성듬성 수염까지 붙어있었다는 이상의 데드마스크는 그러나 행방이 묘연하다.

아내 변동림이 남편의 사체를 화장할 때 함께 불태웠다는 얘기도 있고 서울 어딘가에 있다는 설도 떠돈다.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는 ‘신동아’(1964년 12월호)와의 인터뷰를 통해 데드마스크의 존재를 확인했다.

“오빠의 유물 가운데 가장 찾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발표 유고와 데드마스크입니다. 오빠의 데드마스크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유학생들이 떠놓은 것을 어떤 친구가 국내로 가져와 어머니에게까지 보인 일이 있다는데 지금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어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이후 출간된 이상 평전에는 길진섭이 데드마스크를 떴다는 내용이 대부분 포함됐다. 하지만 아내 변동림은 1952년 쓴 에세이 ‘월하의 마음’을 통해 이상과의 인연을 추억하면서도 데드마스크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1년 김연수의 소설 ‘굳빠이 이상’(문학동네)이 데드마스크 논란에 불을 붙였다. 시인 이상의 삶과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도쿄에서 이상이 죽었을 때 길진섭이, 혹은 조우식이 떴다는 소문이 나돈 데드마스크의 실존과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풀어나가 관심을 모았다.

이처럼 데드마스크를 둘러싼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길진섭이 광복 후 서울로 돌아와 48년 월북하면서 가지고 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길선주 목사의 아들인 길진섭은 이상이 숨질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다 46년 서울대 미술학부 교수가 됐다.

교수직과 함께 조선미술동맹 서울지부 위원장 및 중앙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좌익의 미술계를 이끈 그는 48년 8월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밀입국 참가한 뒤 북한에 정착했다. 최근 미술품 인터넷 경매사인 포털아트를 통해 길진섭 작품이 경매에 부쳐지는 등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그에 대한 자료가 조금씩 공개되고 있어 데드마스크의 행방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광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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