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만의 쌍둥이 울음,섬을 깨웠다… 전남 상낙월도 주민들의 ‘신바람 육아기’
섬에는 쥐가 많았다. 주민들은 3년 전 뭍에서 고양이 10마리를 들여왔다. 쥐는 사라졌는데 이번엔 천적 없는 고양이가 너무 많아졌다. 사람이 150명뿐인 전남 영광군 낙월면 상낙월도에 주인 없는 고양이가 30마리다. 밤마다 “아∼옹” 울어대는 고양이 소리는 아기 울음소리 같았다. 고양이가 3배로 불어나는 동안 섬에선 아기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태어난 2007년생 민서는 중학생이 된 오빠와 함께 두 살 때 섬을 떠났다. 민서 전에 태어난 아영(여)이는 2000년생이다. 섬은 그렇게 늙어가고 있었다.
지난해 3월 초, 섬 발전소에서 일하는 대상웅(42)씨와 아내 이용애(40)씨가 1시간10분 배를 타고 영광읍 그린산부인과에 갔다. 진료실에서 나온 아내는 “임신 맞대… 그런데 쌍둥이래”라고 했다. 이미 부부에겐 윤호(15·중2)와 은형(10·여·초3) 남매가 있다. 계획에 없던 아기, 그것도 한꺼번에 둘이다.
대씨는 고민했다. 정부가 출산을 장려한다지만 쌍둥이 아빠, 4남매 아빠는 부담스러웠다. 주위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며칠 보내다 ‘가겟집 형님’(간판 없는 식료품점을 운영한다)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털어놨다. “나 죽겄어, 쌍둥이랴.”
이후 그에겐 고민이 허락되지 않았다. 섬은 좁다. 걸을 수 있는 길을 다 걷는 데 45분이면 된다.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 가겟집 형님과 헤어진 지 하루도 안돼 마주치는 사람마다 “쌍둥이라며?” “수고혔어” “이게 얼마만이여”라고 인사해 왔다. 섬마을은 이미 출산준비에 들어가고 있었다.
상낙월도의 주 수입원은 새우잡이다. ‘멍텅구리배’로 불리는 무동력 해선망어선(지금은 모두 기계선으로 바뀌었다)으로 새우를 잡아 전국 새우젓 생산량의 50%를 점유하기도 했다. 대씨는 새우 어장에서 그물 다루던 아버지의 5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나 섬에서 낙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릴 적 섬에는 함께 놀 친구가 많았다. 낙월초교 전교생이 180명, 동기생만 35명. 썰물 때 걸어서 건널 수 있는 하낙월도에는 육지의 염산중학교 분교도 있었다. 11개 유인도로 이뤄진 낙월면의 면사무소가 있는 섬답게 주민이 1000명을 넘었다. 대씨는 중학교 때 육지로 나간 뒤 전북 익산에서 이씨를 만나 결혼하고, 발전설비업체 전우실업 낙월사업소에 취직해 2001년 귀향했다.
현재 낙월초교 전교생은 14명이다. 염산중 분교는 오래전 문을 닫았다. 다음달 졸업식을 하면 6학년 2명은 섬을 떠난다. 신입생은 없다. 학생이 적어 올 9월부터는 염산초등학교 낙월분교가 된다. 마을 대소사를 챙기는 40대 이하 청년회는 대씨를 포함해 8명. 군민의 날 체육대회 축구팀 꾸리기도 쉽지 않다.
하루 세 번 배가 들고 날 때 아니면 시끄러울 일 없던 섬마을은 쌍둥이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분주해졌다. 선착장에서 좌측 해안도로를 따라 서른 걸음쯤 가면 대씨의 단층 주택이 언덕에 있다. 육지에서 일 보고 돌아오는 주민들은 대씨 집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별 일 없이 벨을 눌러 산모 안부 묻는 할머니, 노산(老産) 경험을 들려주러 찾아오는 아주머니, 읍내에서 사온 과일 한 봉지 들이밀고 가는 아저씨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씨가 산부인과에 다녀오는 날이면 이번엔 의사가 아들인지 딸인지 알려주더냐고 물으러 왔다.
11월 24일 영광종합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이란성 쌍둥이 강호(아들)와 은진(딸)이가 태어났다. 2.4㎏과 2.3㎏. 3년 만에 아기 울음소리가 섬에 울렸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기록을 뒤져보니 쌍둥이가 태어난 건 60년 만이다.
송용철 이장은 고추와 숯을 나란히 엮어 금줄을 만들고 직접 대씨 집 앞에 걸었다. 섬에 논이 없어 새끼줄 대신 선박용 끈(뱃사람들은 ‘스트롱’이라 부른다)을 사용했다. 대씨네 뒷집에 혼자 사는 장덕녀(80) 할머니는 산모 몸 풀라며 시래깃국을 여러 번 끓여 왔다. 김장은 부녀회가 대신 했다.
대씨가 ‘형수님’이라 부르는 염사순(47)씨는 약 20일간 대씨 집 ‘도우미’ 역할을 했다. 이씨 대신 빨래와 청소를 도맡고 강호와 은진이를 씻기며 은형이를 보살폈다. 50대 이하 여성들로 구성된 의용소방대 10여명도 수시로 짬을 내 집안일을 거들었다.
“이장님과 반장님들이 분유랑 기저귀를 한 보따리 사다주셨어요, 면장님이랑 면사무소 직원 분들도 그러셨고요. 인근 송이도(낙월면) 발전소에선 굴비를 보냈더라고요.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음식을 해오세요. 노인이 많아서 보건지소에 아기 약이 별로 없는데, 지소 분들이 쌍둥이 맞힌다고 육지에서 B형 간염 예방주사 가져다 왕진해주셨어요.” 대씨는 한동안 기저귀 살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3일 영광군 염산면 향화도에서 상낙월도로 가는 여객선 신해5호. 상낙월도에 산다는 선원 주광덕(61)씨에게 물었다.
-쌍둥이 태어났다는데 아기들 보셨어요?
“그럼, 봤지.”
낙월초교 고정현(28) 교사도 타고 있었다.
“쌍둥이 봤죠. 가정방문 겸 그 댁에 가서요. 제가 은형이 담임이에요.”
대씨 집에서 한 집 건너 사는 김미순(56·여)씨는 “마을 사람 전부 몇 번씩 쌍둥이 보러 왔다 갔어요. 딸이 더 통통해”라고 한다. 대씨가 쌍둥이를 공개한 건 태어난 지 한 달이 지난 크리스마스 무렵이다. 불과 1주일 만에 주민들은 이미 누가 강호고, 누가 은진인지 구별할 정도가 돼 있었다.
40년 전 섬으로 시집 온 염점례(63)씨는 쌍둥이 얘기를 꺼내자 “경사지라, 우리 섬 경사여”라고 했다.
-뭐가 그리 좋으세요?
“나 시집 올 땐 우리 섬을 ‘돈섬’이라 혔어. 새우잡이가 돈을 많이 버니께 멍텅구리배 타려고 육지 사람들이 허벌나게 몰려왔다고. 접방(셋방)살이도 방이 없어 못했응께. 근디 썰마(태풍 셀마) 때 선원들이 숱하게 죽고 나선 하나 둘 뭍으로 가고, 중핵교 없어지고, 인자 초등핵교도 없어진다대. 노인들만 사니께 해만 지면 조용허잖여. 그란디 쌍둥이가 태어나니 신기혀지, 신기혀.”
해선망어선은 다른 배가 끌어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1987년 태풍 셀마가 기상청 예보와 반대로 전남 해안을 덮칠 때 대피하지 못한 상낙월도 새우잡이 배 6척이 난파하고 선원 2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정부는 보상금을 지급하며 해선망어선을 없애도록 했다.
기계선으로 바뀐 새우잡이는 예전처럼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 보상금 받은 어민들이 떠나면서 섬은 조용해졌다. 지금은 면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보건지소 발전소 초등학교 등 섬 내 주요시설에나 가야 젊은 사람을 구경한다. 아기 울음소리는 그만큼 ‘신기한 현상’이었다.
상낙월도는 달이 지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달바위길 3번지 대씨 집은 요즘 강호와 은진이가 보채는 통에 밤마다 가장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다. 집 앞 좁다란 골목에선 고양이 울음 대신 진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쌍둥이 키우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지난달 결핵 예방주사를 맞히는데 보건지소에선 그 주사를 놔본 적이 없대서 영광군 보건소로 갔어요. 갓난아기들 안고 배를 탔는데 그날따라 어찌나 파도가 높던지….”
-요즘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산장려금을 주던데요.
“군에서 120만원, 도에서 30만원 나왔어요. 쌍둥이니까 모두 300만원이더라고요. 그래도 섬마을 벌이로 아이 넷 키울 생각하면 갑갑해요. 염산면 할아버지 댁에서 중학교 다니는 큰애가 곧 고등학교 갈 테고, 쌍둥이는 앞으로 돈이 곱절로 들 테고… 제일 걱정은 교육비죠. 그래도 마을 분들이 저렇게 좋아하시니까… 이 마을 아녔으면 낳을 생각 못했을 거예요, 하하하.”
정말 오랜만에 섬사람들을 웃게 한 쌍둥이는 온 마을이 키우고 있었다.
상낙월도(영광)=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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