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 시사풍향계

[시사풍향계-이재열] ‘보이지 않는 자산’에 미래 달렸다

[시사풍향계-이재열] ‘보이지 않는 자산’에 미래 달렸다 기사의 사진

1885년 영국 함대가 거문도를 점령한 직후, 일본의 개화사상가인 후쿠자와 유기치는 ‘조선 국민을 위해 그 나라의 멸망을 축하한다’는 글을 썼다.

‘왕실의 무법' ‘귀족의 발호’ ‘세법 문란’ ‘붕당의 농락’ 등으로 인해 “조선의 국민은 안으로 사유(私有)를 보호받지 못하고, 생명의 안전을 지킬 수 없으며, 도리어 정부에 의해 해를 입는데다, 외국에 대해서는 독립국 국민으로서의 영예를 정부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니, 러시아든 영국이든 아무나 와서 국토를 힘으로 빼앗도록 내버려두어,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는 마르크스가 영국의 인도 경영을 찬양하고, 밀이 서구 열강의 중국 지배를 당연시한 것과 다르지 않은 오리엔탈리즘이다.

상승 욕구가 발전의 기틀

조선 말기 백 수 십년간 노론의 권력 독점과 쇄국정책이 이어진 결과 우리는 근대화 경쟁에서 낙오자가 되었고, 결국 후쿠자와의 저주대로 1910년에 나라를 잃었다. 그로부터 꼭 100년이 지나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백년의 역사는 대반전의 기록이다. 그 전반 50년은 식민지 고통, 해방에 이은 분단, 동족상잔의 아픔이 깊이 각인된 시기였다. 나라를 찾고 독립을 유지한 것 자체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최근 50년간 우리는 기적의 역사를 일구었다. 아프리카 가나와 비슷한 최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고, 두 차례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섰으며, 지난해에는 일본보다도 많은 무역 흑자를 남겼고, 올해는 G20 의장국으로서 세계경제의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고도성장을 가져온 역동성의 비결은 역설적으로 식민지 시절의 특권 귀족층이 친일파로 손가락질 받고, 대지주들도 토지개혁을 거쳐 소멸된 데 있다. 가난하되 평등한, 그래서 상승욕구가 넘쳐나는 소농과 소시민들이 만들어낸 산업화였기에, 교육을 통한 공정경쟁의 효능감은 때로는 치맛바람을 거쳐 기러기 아빠로 과열되기도 했지만 왕실과 봉건적 신분질서가 온존한 일본이나, 토지의 대부분을 소수 가문이 독점해온 태국 혹은 필리핀에서는 상상도 못할 역동성을 낳은 것이다. 중산층 몰락이 논의되는 이 시점에서, 향후 세대의 사회적 이동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하는 시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을 삼류로 끌어내리는 여의도 정치에 대해서는 9선 의원 출신 전직 대통령조차 평가에 인색하다. 서구의 민주주의가 수백년 된 은행나무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20년 된 어린 나무에 가깝다.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새로운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통합의 정치가 뿌리내리려면 축적된 국민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아직은 준(準) 정당화한 시민단체만 비대할 뿐,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사회의 폭과 깊이는 좁고 얕다.

진정성과 비장함으로 무장했던 386세대에 비해 요즘 세대는 행복과 자유에 민감하다. 그러나 이들을 경박하다고 나무라기보다 창의성이 넘치는 글로벌 세대가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집단과 위계에 짓눌려온 한국사회에서 미시적 자유주의 없이는 거시적 민주주의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 시야 확보해야

그동안 우리가 이룬 성공의 비결은 단순히 외국의 모델을 베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조건의 양면을 잘 파악하여 그 장점을 극대화하는 암묵지(暗默知)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도약을 위해 필요한 덕목도 낡은 이념의 틀이나 선진국 기준으로 우리 역사를 재단하는 자학이 아니라, 비판적이되 따뜻한 미래지향적 시선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자산’, 즉 자율 공정 신뢰 투명성 등을 대차대조표로 만들고 흑자 경영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이재열(서울대 교수, 사회학)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