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길-김순정] 예술교육과 자동인형
사람들이 산에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많이 다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적을 이룬 후의 허탈감? 안도감?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긴장감을 잃어버리기 때문일까? 인생에서도 그런 경우가 종종 보인다.
무대에서 보는 발레무용수의 멋진 점프 동작도 착지가 어떠한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착지가 불안하거나 소리가 크게 날 경우에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고, 더러는 부상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결국 높이 오르기 위해서는, 잘 떨어지는 훈련을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이다. 내려오는 훈련은 뛰어오르는 연습보다 길고 지루하며 빛도 나지 않는 숨겨진 시간에 의해 형성된다. 발레에서도 눈에 드러나는 화려함보다 ‘숨김의 미학’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꽃피웠던 발레가 낭만주의시대 이후 한때 쇠락한 이유의 하나는 관객이 발레 자체보다는 몇몇 인기 있는 무용수와 그들에 관한 가십거리에 더욱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에 실망한 예술가들이 당시 문화예술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러시아로 떠났다. 러시아 황실의 막대한 재정지원을 뒷받침으로.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백조의 호수’ ‘잠자는 미녀’ ‘호두까기 인형’ 등 주옥같은 고전발레작품들이 프랑스인 마리우스 프티파에 의해 러시아에서 탄생했다.
프티파가 제대로 안무를 시작한 것은 나이 50이 되어서부터였다. 러시아 발레선생들은 “좋은 선생은 50부터”라는 말을 흔히 한다. 무용수로서 무대경험을 충분히 쌓은 뒤 4년 반의 교사과정을 밟고 교사가 되는 나이는 40대 중반이니, 지천명의 시기가 되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의 나를 돌이켜보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엄격함이 숙련된 발레리나를 키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에게 공포심과 상처를 준 경우도 있었다. 그건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가르치는 것들에 대한 나 자신의 확신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교육은 백을 알아야 하나를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하나를 알고 열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지나치게 열성적인 교사를 만나면 되레 학생과 학부모의 몸과 마음에 멍이 든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다. 거기에는 예술가의 소양보다 지나치게 기술을 강조하는 우리 교육의 문제도 있다. 얼마전 한국예술교육학회가 주관한 ‘예술교육의 문화적 역량’ 주제의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발제자 중 한 분이 음악영재선발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작곡을 위한 시험시간으로 24시간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장소도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할 수 있단다. 지금 우리의 예술교육은 어떨까?
지금은 작고하신 유니버설발레단의 안무가 로비 토바이아스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 있다. 예전에는 순발력 있게 잘 따라하는 무용수들을 선호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좀 걸려도 자기의 개성을 잘 살려나가는 무용수들을 더 좋아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누군가가 시켜서 따라하는 교육의 끝은 뻔하다. 채워지는 내용보다 보여지는 것에 치중하는 예술교육은 많은 자동인형들을 양산한다. 교육현장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과 의심을 유발시켜야 한다.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만 그친다면 아무리 좋은 교육철학과 교육정책이 있어도 교육의 선진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 이상으로, 그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 이유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일 것이다.
김순정(성신여대 교수·스포츠레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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