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유적과 유물을 다루는 수중고고학은 역사가 길지 않다. 잠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1943년 프랑스 발명가 에밀 가냥과 해저 탐험가 자크 이브 쿠스토가 공기탱크를 메고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아쿠아렁(Aqualung)’을 개발한 뒤에야 수중고고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수중고고학은 1960년 튀르키예에서 청동기시대 난파선이 발굴된 뒤 6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발굴된 육상 유적과 맞먹는 놀라운 발견을 이뤄냈다.
세계적인 수중고고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바다에 수장된 12척의 난파선 이야기를 펼쳐낸다. 책은 단순한 난파선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3500년의 인류사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12척 가운데 상당수의 난파선은 저자가 직접 발굴에 참여한 것들이다.
1992년, 영국 남부 항구도시 도버에서 목재 파편 형태로 발견된 ‘도버 보트’는 기원전 16세기 청동기 시대의 모습을 보여 준다. 길이 18m, 폭 2.5m, 무게 8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도버 보트는 바다를 건너는 가장 오래된 항해용 선박으로 확인됐다. 저자는 청동기 시대에도 이미 영국과 유럽 사이의 바다는 교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기보다 사람, 상품, 문화가 오가던 통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도버 보트에는 일부러 판자를 떼어낸 흔적이 있었다. 의식적으로 파손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배의 주인이나 선장이 사망한 뒤 장례용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저자는 “배가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도 사람과 그들의 소유물을 실어 나르는 중요한 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1545년 프랑스 함대와의 전투 중 침몰한 영국 전함 메리 로즈호에는 튜더 왕조 헨리 8세 시대의 영국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1982년 인양된 메리 로즈호에는 2만점 이상의 유물이 실려 있었다. 장교의 장화와 선원의 나막신은 당시 신분제 사회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고, 소뼈가 담긴 나무통은 염장 소고기가 선원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음을 알려 준다. 특히 대구 뼈는 DNA 분석 결과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섬 근처에서 잡힌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영국이 이미 북대서양 어업에 진출해 있었고 이를 통해 광범위한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음을 보여준다. 외과용 메스 등 의료기구도 발견됐는데 당시 전함에는 외과 의사가 상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난파선과 얽힌 사람들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 시대의 상인(‘울루부룬 난파선’), 기원후 2세기 로마로 가던 안과 의사(‘플렘미리오 난파선’), 남중국해에서 황금을 찾던 페르시아 선장(‘벨리퉁 난파선’), 죽음을 눈앞에 둔 북극탐험가(‘HMS 테러호’), 북대서양에서 어뢰에 맞은 배의 마지막 생존자(‘SS 게어소파호’)의 사연도 직접 대면할 수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지중해: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1949)에서 “바다는 과거 존재를 기록한 가장 위대한 문서”라고 말했다. 40여년 동안 수중 고고학자로 살아온 저자는 “바다의 밑바닥을 벗겨내는 건 위대한 문서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위치도 표시되지 않은 수없이 많은 난파선 잔해는 우리가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한, 끝없이 펼쳐지는 태피스트리(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처럼 계속 풍부한 역사적 사실을 내놓을 것이다.”
⊙ 세·줄·평 ★ ★ ★
·세계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인도한다
·역사적인 사건은 물론 개인의 삶까지 풍부하다
·저자 자신의 발굴 경험이 있어 생생하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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