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의 화음 판소리와 전시공간 ‘하나의 작품’으로 만나다

Է:2024-09-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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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광주비엔날레’ 르포

호랑가시아트폴리곤에 전시된 인도네시아 출신 줄리앙 아브라함 또가의 설치 작품. 그림자극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배경으로 현지의 전통음악이 나온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일대 한 폐가. 1970년대 지어진 반 양옥 형태의 빈집 안방에서 ‘심청가’가 흘러나온다. 3대의 TV 수상기에서 보이는 미라 만 작가의 영상 ‘엄마의 기억은 다를 수도’는 심청가를 재해석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이주와 가족, 희생의 문제를 울림 있게 다뤘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7일 공식 개막해 86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용봉동 비엔날레 전시관과 ‘빈 집’ 등 양림동 일대 8곳을 전시장 삼은 이번 비엔날레는 ‘관계 미학’ 담론으로 명성을 얻은 ‘전시 기획의 황제’ 니콜라 부리오(59)가 예술 감독을 맡은 점, 또 서구의 간판 기획자가 가져온 키워드가 판소리는 점 때문에 기대를 모았다. 뚜껑이 열린 비엔날레 현장을 지난 6일 미리 다녀왔다.

전시장을 돌며 판소리를 찾는 수고는 버리는 게 좋다. 미라 만의 작품 등이 있긴 하나, 전시 주제를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고 한 것에서 보듯, ‘판(사람이 모인 공간)’과 ‘소리’가 합쳐진 ‘판소리’는 소리와 공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이번 전시의 메타포로 쓰였기 때문이다.

30개국 72명 작가가 초청받았는데 대부분의 작품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부리오 예술 감독은 “이번 비엔날레는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오페라’라 생각하면 된다”면서 “작가들은 소리뿐 아니라 소리와 공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각자의 담론을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엔날레 전시관은 세 가지 소리 유형에 따라 동선을 짰다. 1·2전시실은 ‘부딪침 소리’ 섹션으로 소리의 피드백 효과를 다뤘다. 관객이 미로 같은 검은 복도를 걸으며 소리만 듣게끔 하는 작품으로 전시를 여는 것은 신선했다. 에메카 오그보가 들려주는 나이지리아의 역동적인 도시 라고스의 거리 소음은 산업화, 세계화, 기후 변화 등 인간의 활동이 만들어낸 부정적 결과물로서의 소리가 윙윙거린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전자음악을 아리아 삼아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전선으로 엉겨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예인의 설치작품 속을 걸으니 산업화가 생태계에 끼친 죄악이 감지되며 오싹하는 기분이 들었다.

3전시실의 ‘겹침 소리’ 섹션에서는 생태적 성찰이 담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인류세 이후를 이야기하는 맥스 후퍼 슈나이더의 대형 설치작업 등 기계·동물 같은 비인간과의 대화가 시도되는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비앙카 봉디가 하얀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 같은 우물, 작은 의자가 설치된 몽환적 세상을 펼쳐 놓았다.

4·5전시실은 ‘처음 소리’ 섹션으로 바이러스, 환경 호르몬 등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지금까지의 전시 칸막이가 없어지고 종말의 지구를 벗어나 도착한 새로운 기원, 새로운 우주를 보는 듯 광활하게 펼쳐진 전시 디스플레이가 특징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비앙카 봉디는 하얀 소금 한가운데 오아시스 같은 우물, ‘어린 왕자’가 앉았을 것 같은 작은 의자가 놓인 몽환적 세상을 펼쳐 놓는다. 빙하의 소리 방에서는 뼛속에 살아 있는 듯한 빙하의 웅얼거림도 들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는 명불허전이다. 니콜라 부리오의 관록이 주는 원숙미가 넘친다. 관객의 반응까지 정교하게 계산한 듯 시각적으로 점층적인 구조를 취했다. 처음 산업화의 폐해를 주장하는 공간 등에서는 칸막이가 있다가 4·5전시실에서는 칸막이를 없애고 새로운 대안을 찾듯 우주처럼 광활하게 펼쳤다. 화이트 큐브를 연상시키는 흰색 가벽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높은 층고가 주는 기세에 눌리지 않고 작품에 오롯이 집중하는 효과를 낸다.

베니스비엔날레 등 세계의 비엔날레에서는 최근 들어 전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커튼 등 가변적인 가림막으로 대체하는 것이 추세였다. 니콜라 부리오는 전시의 완성도를 위해 그런 흐름과는 거꾸로 화이트 큐브 문법을 택한 셈이 됐다.

비엔날레 전시관은 공간이 넓다 보니 작품 간 소리의 간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소리와 공간이 하나의 작품이라는 이번 비엔날레에 오롯이 빠지는 맛은 양림동 일대가 낫다. 인도네시아 출신 줄리앙 아브라함 또가가 그림자극을 연상시키는 소리 경험을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은 필수 관람 코스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는 역사가 100년을 넘어가며 흔한 미술행사가 됐다. 베니스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서울·광주·부산을 비롯해서 전국 곳곳에서 단풍 축제처럼 열린다. 산업화, 이주, 기후 위기 등 인류가 당면한 이슈가 과잉되게 되풀이된다. 니콜라 부리오 감독은 주제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소리라는 청각적 형식을 내세워 출구를 찾은 거 같다.

광주광역시=글·사진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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