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貧者)의 식탁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

2011년 회사가 부도난 뒤 서울 관악구 한 고시원으로 들어온 이승수(가명·53)씨는 식사가 빈곤하고 불규칙하다. 고시원에서도 여러 사업을 시도하고 재기를 꿈꿨지만 식단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뷔페식으로 이것저것 저렴하게 나오는 식당(일명 ‘고시 식당’)을 가거나 고기, 술을 많이 사 먹었죠. 밖에서 먹는 게 편했으니까요.”

결국 지난해 말 당뇨 판정을 받아 합병증으로 다리 신경이 손상됐다.
키 175㎝에 체중이 88㎏이었던 그는 살이 급격하게 빠져 71㎏이 됐다.

어려운 처지를 인정받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지만 여전히 영양상으로 균형 잡힌 음식을 먹기는 어렵다. 수급비 가운데 절반 가까운 돈이 방값으로 나간다. 의료급여 혜택을 받지만 새롭게 의심되는 질환에 대한 비급여 검사는 자신의 돈으로 내야 한다.

“얼마 전 병원에서 갑상샘 초음파를 해보자고 했지만 검사비 낼 돈이 없어 일단 미뤘습니다.”

이씨는 책상 의자에 플라스틱판을 얹어 식탁을 만들고 점심을 먹는다.

반찬을 꺼내면 강된장과 마늘장아찌, 어묵·멸치볶음, 배추김치 냄새가 고시원 복도에 퍼진다.

“유튜브에서 당뇨 전문가들이
나트륨이나 당류 먹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좀 싱싱한 거 먹으라고 하는데… 어렵네요.”

가난한 사람들은 선천적·후천적 질환에 노출돼있는 경우가 많다.
적지 않은 의료비가 고정적으로 나가는 탓에 식비를 아끼게 되고 이는 부실한 식사로 이어져 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몸이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하는데 오히려 못 먹게 된다.

기초생활수급 가구인 이현진(가명·54)씨와 세 자녀도 병원비와 약값이 식비보다 먼저다.

첫째(25)는 지적장애와 우울증, 셋째(19)는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고 있다. 이씨 본인도 동맥경화와 관절염, 골다공증으로 약을 먹는다.

의료수급 혜택을 받지만 1종에 비해 혜택이 적은 2종이어서 검사, 진료를 받을 때마다 적지 않은 돈을 써야 한다.

자주 병원을 오가다 보니 교통비마저 부담이 된다.

네 식구가 20만원 정도로 한 달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식탁은 늘 간단하다. 밥은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나라미로 짓고 김치를 제외한 반찬은 한 가지 종류일 때가 많다.

고기는 많아야 두 달에 한 번, 비교적 저렴한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먹는다. 과일은 복지관에서 조금씩 나눠줄 때가 아니면 구경하기 어렵다.

“먹는 거 보면 만날 똑같아요. 밥이랑 김치랑 밑반찬 하나 정도죠. 미역국 자주 끓이는데 안에 넣을 게 없어요. 애들 생일에 고기 없이 미역만 끓여줄 때도 있어요.”

음식을 골고루 먹이지 못해 자식들이 아픈 것 같다고, 어머니는 자신을 책망했다.

주거비도 가난한 사람들이 식비에 돈을 쓰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다.

서울 성북구 반지하 방에 사는 이원이(가명·73) 할머니는 기초연금과 공공일자리로 월 60만원 수입이 있지만 그중 절반인 30만원을 월세로 낸다.

“방세 내고 나면 먹고살 돈은 한참 모자라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위소득 30% 미만(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 기준) 가구의 월 평균 식품비(외식비 포함)는 36만8000원으로 중위소득 50% 이상 가구 식품비 74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외식비만 놓고 보면 중위소득 30% 미만 가구는 월 평균 11만4000원, 중위소득 50% 이상 가구는 34만원으로 3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가난한 사람들은 식료품 지출이 적을뿐 아니라 외식 빈도도 크게 낮다는 뜻이다.

식비 지출을 최소화한 저소득층의 식사는 간단할 때가 많다.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는 제한돼 있고 양이 충분치 않다.

홀로 사는 이원이 할머니는 주된 반찬이 김치와 장아찌다.

할머니는 “고기나 생선은 한 달에 한 번도 못 사 먹은 적이 많다”고 했다.

복지관에서 주는 레토르트 장조림이나 구운 생선만이 정기적으로 섭취하는 단백질이다. 코로나19 전에는 복지관을 찾아 급식을 먹었다.

경남 한 소도시에서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전인순(가명·56·여)씨는 푸드뱅크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빵을 지원받아 먹고 있다.

전씨는 전통시장에서 마감 전 떨이로 식자재를 팔 때 장을 본다. 아이들에게 변변찮은 음식만 먹인 것 같아 마음에 늘 미안함이 있다.

“TV에는 화려한 음식들이 많이 나오는데, 아이들은 외식 한 번 못 하며 자랐어요. 가끔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좋은 음식들을 한 번이라도 접했다면 좋았을 텐데….”

기초생활수급자로 서울 성북구 한 지하방에서 혼자 사는 이춘숙(가명·84) 할머니는
반찬이 없으면 맹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허프다’고 했다.

‘허전하고 슬프다’는 뜻으로 들렸다.

“혼자 반찬도 없는 밥 들고 앉아 봐봐요, 얼마나 허픈가. 개밥도 아니고 뭐요 이게.”

취약계층 식품군별 섭취량(단위:g) 서울시 평균 / 취약계층
  • 노인
    육류
    64
    32.4
    과실류
    256.3
    54.1
  • 성인
    육류
    121.7
    55.9
    과실류
    216.2
    61.4
  • 아동·청소년
    육류
    122.3
    112.4
    과실류
    157.5
    109.4
자료: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서울시 먹거리 보장 구현을 위한 사회·경제적 취약계층 먹거리 실태 연구'

2018년 서울시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먹거리 실태를 연구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취약계층 대부분은 고기와 과일을 잘 먹지 못한다.

특히 노인의 경우 전체 평균 대비 육류 섭취율이 50.7%, 과실 섭취율은 21.1%다.

저소득층은 최근 치솟은 물가로 식비 지출을 더욱 줄이고 있다.

열 살 난 외동딸을 홀로 키우는 양정주(가명·41·여)씨는
“항상 제일 저렴한 쌀을 구매하는데, 3만원이면 샀던 쌀이 어느새 4만원대로 올라 있더라고요.
한 번 살 때마다 손 달달달 떨면서 사야 돼요”라고 말했다.

아직 본격적인 연구는 없지만 코로나19 팬데믹도 저소득층 식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이춘숙 할머니는 몸무게가 코로나 팬데믹 전 60㎏에서 54㎏으로 줄었다. 코로나 전에는 복지관에 가서 급식을 먹었지만 요즘에는 레토르트 음식을 받아 끼니를 해결한다.

“못 먹어서 살이 빠졌는지, 활동을 못 해서 빠졌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생활비가 더 생기면 먹는 거에 좀 더 쓰고 싶어요. 지금보다 조금 더 잘 먹고 싶죠.”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취약계층은 코로나 이후 소득이 줄고 (식자재) 가격이 오르고 일자리를 뺏기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며 “소득이 부족해 식품비를 지출하지 못하면 영양수준과 섭취량이 떨어지고, 유병률이 높아져서 건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1년 9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