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貧者)의 식탁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

대학교 3학년생 윤영석(가명·21)씨의 끼니 고민은 단순하다.

3000원짜리 컵밥과 5000원짜리 식당 도시락 중 무엇을 먹을까.

그는 오늘도 컵밥을 파는 노점상으로 향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을 거야.”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윤씨는 대학 진학을 하며 상경한 뒤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영어학원에서 일했다.

학기 중에도 주말에는 과외를, 평일 저녁에는 학원 알바를 했다.

  • 8월 9일 아침 8월 6일 아침
  • 8월 6일 점심 8월 6일 점심
  • 8월 5일 점심 8월 5일 점심
  • 8월 5일 아침 8월 5일 아침
  • 8월 5일 저녁 8월 5일 저녁

기숙사비 20만원에 통신비, 보험료, 교통비를 더하면 40만원 남짓.

여기에 식비까지 합치면 매달 70만원을 벌어야 한다.

“저 혼자 고생하면 어머니 편하게 지내실 수 있다는 생각에 밥은 최대한 싼 거로 먹고 살았습니다.”

지난해 저녁을 거르는 생활을 2~3개월 했다가 몸무게가 7㎏ 빠졌다는 이야기는 어머니에게 하지 않았다.

윤씨가 한 끼 식사에 마지노선으로 정한 금액은 7000원.

KFC 햄버거

그가 보내온 식사 사진 15장 가운데 8장은 5000원짜리 식당 도시락의 모습이었고, 2장은 각각 2500원과 2800원짜리 편의점 샌드위치였다. 가장 비싼 식사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KFC의 6600원짜리 버거 세트였다.

식품영양 전문가들은 영양 불균형의 새로운 사각지대로 저소득층 20대 1인 가구를 꼽는다. 혼자 사는 20대는 식습관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기에 경제력까지 낮으면 건강을 해칠 최악의 식단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초일 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장은 “알바를 하면서 연명해야 하는 20대 1인 가구는 진정한 영양 취약계층”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한 도시에서 외할아버지와 둘이 사는 대학생 이현영(가명·21·여)씨도 요즘 하루 두 끼만 먹는다.

방학을 이용해 단기 알바를 하는데, 일하는 곳에서 식사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158㎝에 39㎏인 이씨는 배가 고파 짜증이 많이 난다고 했다.

“일 끝날 때쯤 되면 너무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져요.”

이씨는 어렸을 때 부모의 이혼을 계기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지방으로 떠난 어머니도 딸을 챙겨줄 형편이 안됐다. 이씨 본인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수급비 수십만원에 알바를 해 번 돈으로 생활비와 교통비, 용돈을 해결한다.

외할머니가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균형 있는 식사’는 더 어려워졌다.

“식비가 만만치 않으니까 골고루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알바를 하는 청년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식비부터 줄인다. 알바노조가 지난 4월 청년 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 달 수입이 부족한 경우 대처 방법’을 묻자 ‘식비를 줄인다’는 응답이 38건(복수응답 가능)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음식의 질을 낮춘다’(27건) ‘끼니를 줄인다’(19건) ‘대체 음식을 먹는다’(16건) 등이었다.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신기윤(가명·28)씨는 로스쿨 법학적성시험(LEET) 준비를 위해 식비를 아낀다고 했다. 그는 LEET 인터넷 강의 수강과 교재 구매에 10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 대신 1000원대 학생식당 밥을 자주 먹었다.

“이 돈을 쓰면 다른 걸 못하니까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스쿨 학비가 비싸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입학하면 전액 면제가 된다”고 말했다.

“입학만 하면 생활비 대출이 가능하고 마이너스 통장 대출도 수천만원 되는 거로 알아요. 변호사 시험 합격해서 빚을 갚아나가는 삶을 살 생각입니다.”

서울 대학동 고시촌에서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박민석(가명·23)씨도 미래를 위해 양질의 식사는 제쳐놨다.

매달 40만원씩 나가는 생활비 중 식비는 5만원 남짓.

그간 알바로 모은 1000만원으로 합격 때까지 버텨야 하는 그에게 그 이상의 식비를 감당할 여력은 없다.

  • 8월 3일 점심 8월 3일 점심
  • 8월 5일 점심 8월 5일 점심
  • 8월 6일 점심 8월 6일 점심
  • 8월 4일 아침 겸 점심 8월 4일 아침 겸 점심

영어학원에서 알바를 하는 윤영석씨가 식비를 최소화하는 진짜 이유도 공인회계사(CPA) 시험 준비 때문이다.

6개월 수강하는 인터넷 강의가 200만원, 14권 구매해야 하는 교재가 1권에 5만원이다.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으니까 거기에 돈 쓰는 게 먼저죠. 식비를 더 쓸 생각은 없어요.”

식비가 부족한 청년들은 공부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약속이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신기윤씨는 LEET 공부 모임의 저녁 식사 제안을 여러 차례 거절한 게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배달 음식을 먹자는 제안도 부담이었다.

“배달비까지 하면 만원을 내야 해요. 돈 없다고 다른 거 먹겠다고 말하기 쉽지 않잖아요.”

이현영씨도 최근 친구 3명과 ‘힙한’ 카페에 방문했다가 비싼 커피 가격에 놀라 되돌아 나왔다.

청년들은 식비에 들어가는 돈을 아끼기 위해 정보력을 최대한 동원한다.

공사장과 물류창고에서 허리를 다친 뒤 일을 못 하고 있는 최상헌(가명·38)씨는 매달 1일 근처 모든 편의점을 방문한다. 바뀐 세일 행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편의점 별로 주요 세일 품목을 기록해뒀다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이용하거든요.”

2021년 9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