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부동산에 발목 잡힌 중국

입력 2025-12-10 00:37

중국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길어지고 있다. 관세전쟁에서 세계 최강 미국에 대등하게 맞서고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 경쟁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중국도 부동산 문제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중국부동산정보그룹(CRIC)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중국 상위 100대 개발 업체의 지난달 주택 매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급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5개 주요 개발 업체의 같은 달 평균 매출이 전년 대비 42% 감소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리서치 업체인 중국지수연구원은 중국 100개 도시의 중고주택 가격이 11월에 7.95% 급락했다고 밝혔다. 과잉 매물과 주택매수심리 약화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중국의 완공·미판매 주택 재고는 약 7억6200만㎡로, 지난해 말 7억5300만㎡보다 증가했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인 완커의 채무불이행 우려도 크다. 헝다와 비구이위안에 이어 완커까지 파산하면 중국 부동산시장은 더 심한 침체를 피하기 어렵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난 4월 중국에 부동산 위기 해결을 촉구했지만 상황이 더 나빠진 셈이다.

IMF는 당시 “중국의 경기 둔화는 부동산시장 부실과 깊이 연관돼 있다”며 “부동산 부문 위기가 시작된 이후 소비자 신뢰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계 증권사 다이와캐피털마켓의 부동산 분석가인 윌리엄 우는 최근 “‘주택시장 침체를 멈추겠다’는 중국 정부의 목표가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보인다”며 “주택가격 하락 속도가 더 빨라지고 유명 기업의 부도가 다시 늘며 새로운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를 탄 것은 2000년대 초부터다. 규제 완화와 경제 성장에 힘입어 부동산시장이 활황세를 보이자 부동산 개발사들은 빚을 내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과열되자 부동산 가격 거품에 대한 경고가 잇따랐다. 중국 정부도 여러 차례 시장 안정책을 내놨지만 투기 열풍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때를 놓친 결과는 참혹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8월 ‘3대 레드라인’을 발표하고 부동산 개발사에 대한 대출을 조이자 거품이 빠른 속도로 꺼지기 시작했다.

2021년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사였던 헝다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대형 개발사들의 채무불이행과 미완공 아파트 급증으로 소비자들이 주택 구매를 꺼리면서 주택 수요가 급감했다. 이는 가격 하락과 매수 기피라는 악순환을 낳았다. 부동산시장 침체는 내수 부진으로 이어졌고, 부동산 관련 수입에 재정을 의존하던 지방정부는 빚더미에 올랐다. 중국이 부동산 거품 붕괴로 ‘잃어버린 30년’을 맞은 일본과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부동산시장은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다. 두 나라 모두 서구 선진국과 달리 부동산이 가계 자산의 70% 이상을 차지해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부동산 관련 대출의 비중이 높고 소득 수준과 비교해 집값이 비싸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0월 “부동산 자산 상승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을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차원에서 미래 전략으로 추진하는 AI 투자 못지않게 부동산시장 안정도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중국의 실패가 보여주듯 부동산 대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세제 개편 등 후속 부동산 대책 수립을 정치권에서 막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이라면 선거에서 이기려고 한시가 급한 범국가적 AI 투자를 1년 뒤로 미루는 것과 같은 한심한 발상이다.

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