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불수능에 울분 찬 학부모의 호소… 수능 이대로 괜찮나

입력 2025-12-10 00:36
한 학부모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새천년홀에서 열린 종로학원의 ‘2026 정시 합격 가능선 예측 및 지원전략 설명회’에서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학원 측 자료에 메모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어 어려워 1등급 전년대비 반토막
수시 최저학력 미달에 집안은 지옥
N수생 탓에 난도 조절 어렵다지만
예측 불가 입시가 근본 문제 아닌가

한 고3 학부모가 기자에게 울분에 찬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성적표가 나올 때까지 지난 3주 동안 ‘지옥’을 겪었다는 내용입니다. 자녀의 초·중·고 12년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과정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답니다. 이유는 출제 당국이 올해 수능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학부모를 ‘시험 못보고 세상 탓한다’고 일축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수시와 정시로 이원화된 기형적인 대입 제도를 들여다보면 그 울분에 고개를 끄떡일 수 있습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올해 수능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특히 영어가 문제였는데, 1등급 비율이 3.11%로 역대 최저였습니다. 문제는 수시 수능 최저학력기준(최저기준)입니다. 많은 대학들이 수시 전형에서 최저기준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국어·수학·영어·탐구 4영역 합 6’ 등입니다. 국어 영어 수학 탐구 등급을 합쳐 6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조건이죠. 이를 못 맞추면 학교생활기록부 등이 아무리 좋아도 탈락입니다.

현행 대입은 수시에서 자기 수능 성적을 모르는 9월에 원서를 쓰도록 합니다. 그래서 지원하는 수시 전형에 설정된 최저기준 충족 여부는 ‘추정의 영역’이 됩니다. 수험생들은 교육청 주관 학력평가와 평가원의 6월과 9월 공식 모의평가 성적 등을 토대로 예측해야 합니다.

영어는 최저기준 충족을 위한 핵심 과목입니다. 절대평가로 등급만 나오기 때문이죠. 정시에서는 통상 가점이나 감점하는 방식으로 영어 등급을 반영하므로 영향력이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수시에서는 최저기준 충족 여부를 가릅니다. 당락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난이도 조절 실패는 치명적입니다. 평소 평가원 모의평가 등에서 안정적으로 90점 이상 받아온 수험생이라면 이에 맞춰 수시 원서를 쓰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6월 모의평가에서 어렵게 나오고 9월 모의평가가 쉬웠다면 그 중간 정도 난도로 예측합니다. 출제 당국과 수험생들 사이에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입니다.

올해는 90점 이상인 1등급을 안정적으로 받아오던 수험생들이 대거 80점대로, 80점대는 70점대로 각각 밀려났습니다. 1등급 3.11%(1만5154명)는 전년도 6.22%(2만8587명)의 절반입니다. 1등급에서만 1만3433명이 증발했습니다.

메일을 보내온 학부모의 자녀도 이 중 하나입니다. 등급이 하락해 그간 준비해온 수시 전형의 최저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죠. 수능 성적을 9월에 예측하도록 해놓고 출제를 이렇게 하면 수험생 뒤통수를 치는 일입니다.

난이도 참사의 조짐은 있었습니다. 올해 평가원이 주관한 6월 모의평가에서 1등급 비율은 19.1%였습니다. 5명 중 1명이 1등급일 정도로 쉬웠습니다. 9월에는 4.5%로 매우 어려웠습니다. 평가원이 주관하는 6·9월 모의평가는 수험생 입장에서 수능의 난이도를 가늠하는 척도입니다. 당연히 6월 모의평가보다는 까다롭게, 9월 모의평가보다는 조금 더 쉽게, 지난해 1등급 6.2% 수준으로 예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대평가인 영어에서 안정적으로 일정 등급을 받는다면 상대평가인 국어와 수학, 탐구 등에 더 공을 들이는 게 합리적입니다. 만약 당국이 영어를 어렵게 낸다는 시그널을 줬다면 수험생들이 영어에 더 많은 공을 들였겠죠. 돌이킬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영어 등급이 떨어진 수험생의 학부모들은 국어와 수학의 상대평가 기준을 적용해 상위 4%까지 1등급으로 올려주길 원하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입시는 누군가 붙으면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다른 수험생이 반발할 겁니다. 결국 난이도 조절 실패의 피해는 고스란히 수험생 몫으로 남게 될 겁니다.

교육부는 출제 과정을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난이도 조절 실패 때마다 반복돼 온 일입니다. 학생 눈높이를 모르는 대학 교수 중심의 출제가 문제라면서 교사의 검토 시스템을 강화한다고 했다가 또 문제가 터지자 출제진에 교사 더 넣기도 했죠. 하지만 난이도 참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교육부의 조사와 후속 조치에 기대감을 품기 어려운 이유가 그들이 과거에 실패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 능력 밖의 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난이도 조절이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지만 응시 집단의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큽니다.

난이도 조절을 정교하게 하려면 응시자의 수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출제 당국은 교육청 주관 학력평가와 6·9월 모의평가 등으로 수험생 수준을 가늠하고 있습니다. 재학생은 어느 정도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N수생입니다. 올해 수능 응시자 중 N수생은 32.6%(16만794명)나 됐습니다. 특히 6·9월 모의평가를 보지 않고 수능만 본 N수생 7만~8만명의 수준을 알기 어렵습니다. N수생 규모와 수준은 의대 증원이나 대입 제도 변동 등 외부 요인에 출렁이므로 출제 당국에게도 난이도 조절은 ‘운의 영역’인 셈입니다.

학부모가 보내온 메일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수능 때 ‘수험생 파이팅’ 플래카드 걸어둔 국회의원들에게 항의메일을 보냈지만 회신이 없었습니다. 어떤 의미의 파이팅이었을까. 3주 내내 울고 있는 수험생 목소리를 한 번 들어주지도 못하면서….”

수험생·학부모 고통뿐 아니라 출제 당국조차 불확실성으로 내몰리는 구조를 손봐야 하지 않을까요. 매년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수능 난이도 논쟁 대신 수시·정시로 나뉘어 예측 가능성을 상실한 제도부터 손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수험생들의 12년 노력을 단 하루 시험의 난이도 변화에 맡겨두는 제도는 지속가능할 수 없습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