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노동계 압박, 경영계 난색… 합의 없는 추진 땐 부작용 심각

입력 2025-12-03 02:10

퇴직 시점과 연금 수급 사이의 ‘소득 크레바스’를 메울 정년연장은 분명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어떻게 갈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론을 두고선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정부·여당은 법정 정년연장을 연내 입법화하겠다고 강조하지만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합의 과정이 없다면 노사 갈등과 세대 갈등, 일자리 축소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4월부터 정년연장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온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월 협의체를 특위로 격상한 이후에도 여전히 구체적인 정년연장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가 조속한 입법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법정 정년연장과 재고용을 결합한 방안을 논의 중이다. 만약 2027년부터 정년을 61세로 올린다면 1967년생부터 바뀐 법의 적용을 받는데, 이미 정년을 맞은 1966년생은 재고용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간 정년연장 논의는 ‘법 개정을 통한 정년연장’과 ‘기업의 계속고용 의무화’라는 두 가지 틀에서 진행됐다. 노동계는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을 위해 법을 먼저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다수 법안도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정년 연령을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계의 반대는 완강하다. 경영계는 획일적으로 정년을 연장할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급격히 키우고 신규 채용 여력을 줄여 청년 취업난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호봉제를 기반으로 한 경직된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기업이 다양한 방식의 계속고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년연장 논의가 꼬인 이유는 노사 간 괴리뿐 아니라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복원되지 않은 요인도 크다. 윤석열정부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적극적으로 ‘계속고용 제도 도입’ 논의를 진행했지만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로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에서 이탈하며 논의가 멈춰섰다.

전문가들은 2016년 정년 60세 도입 과정에서 임금피크제 소송, 조기 퇴직 등 부작용이 뒤따랐던 사례에 비춰 정년연장을 ‘속도전’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2일 “정년연장은 숫자의 문제도, 법 조항 하나 고치는 입법 과제도 아닌 세대·계층 간 이해관계를 재조정하는 사회적 계약이자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가 얼마나 비용을 부담할지, 어디까지 양보할지, 어떤 속도로 제도를 고쳐 나갈지에 대한 다수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노·사·정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 7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정년연장을 위한 정책 방안’ 보고서를 통해 재고용 의무화를 먼저 도입한 뒤 시차를 두고 법정 정년을 상향하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보고서는 과도한 기업 부담을 완화하고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임금체계 개편, 청년 일자리 창출, 정부 인센티브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