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대상을 받은 심규철(25)씨를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동행한 어머니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정작 심씨 본인은 주변을 계속 오가며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심씨는 자폐와 지적장애에 더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함께 앓고 있다.
어머니 이호숙(56)씨는 "좀 부산해 보이죠? 그런데 그림을 그릴 때는 정말 차분히 앉아서 몇 시간이고 집중해서 그린다"고 말했다. 이번 대상 수상작도 자폐 특유의 집중력으로 수많은 인물을 깨알같이 그려 넣은 '고구려의 행군(2)'이다. 고구려 벽화 안악3호분에 나오는 '행렬도'를 모티브 삼아 그렸다.
행렬도는 수레에 앉아 있는 무덤 주인이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행렬을 벌이는 모습으로 등장인물만 250명이 넘는다. 심씨는 원래의 채색 행렬도를 대형 종이(56x76㎝) 4장에 펜을 이용해 흑백 드로잉화로 재탄생시켰다. 네 장을 이어붙이면 길이 3m가 넘는 웅장한 스케일로, 말 탄 기병과 방패를 든 보병 등이 자로 잰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대작을 완성하기 위해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심사위원들은 “작가의 신경다양성 특성이 작품 안에서 독자적 표현으로 승화됐고, 드로잉의 압도적 밀도가 놀랍다”고 입을 모았다.
심씨는 초등학교는 일반학교, 중학교는 대안학교를 다녔지만 두 학교 모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특수학교를 선택했다. 엄청난 경쟁률이었지만 “가장 도움이 필요해 보여서” 선발된 그 학교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텃밭 가꾸기, 뜨개질, 요리, 바리스타 등 직업 연계 교육에 참여하며 흥미를 느꼈고, 작은 성취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학교 분위기 속에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무엇보다 미술 재능을 발견하게 됐다. 선생님이 시킨 그림 안내판을 만들어 칭찬을 들은 뒤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겨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스케치북이 쌓일수록 선은 정교해졌고 자신감도 넘쳤다. 고교 졸업 후 2020년 장애 예술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사회적 기업 스페셜아트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그림지도를 받았다.
심씨는 “그림을 그리면 그냥 기분이 좋고 기술력이 느껴져 좋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기술력’은 펜과 붓을 휘두르는 숙련도를 의미하는 그만의 어휘 같았다.
갈고닦은 기술력으로 그가 표현하는 세계는 얼핏 현실의 재현 같지만 동시에 상상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림을 여러 개 이어붙이는 첫 작업인 ‘식당’(2003, 108x153㎝, 종이에 채색) 시리즈를 보면 잘 드러난다. 종이(36x51㎝) 9장을 이어 붙인 이 대형 그림에서 식당에서 시중드는 이들은 인간이지만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는 이들은 로봇이다. 외계인과 팔이 네 개 달린 사람도 손님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서로 이질적인 존재들이 함께 평등하게 어울리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심씨의 회화 속에 담겼다.
심씨가 이렇게 여러 장에 연작처럼 작업하는 이유는 뭘까. 어머니는 “하다 보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잖아요. 새로운 게 생각이 나니까 계속 이어서 그리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심씨는 내년에는 자신이 아주 오랜 시간 무한 반복하듯 그려온 로봇 개체들과 무기 그림들을 디지털화해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또 로봇 캐릭터를 등장인물로 삼은 성경 이야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자 정부의 장애예술 활성화 지원 사업에도 응모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 작가의 후원을 받아 국민일보가 주최하는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은 신경다양성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언론사 유일의 공모전이다. 대상을 받은 심씨를 비롯해 총 13명의 수상 작품은 내년 1월 중순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