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시간 속에서 유영하는 존재라는데, 왠지 나를 떼어두고 앞서가는 것만 같았다. 멀찍이 서서 화성으로 띄운 로켓이 작은 점이 되도록 멀어지는 걸 지켜보는 기분을 안고,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봤다. 그 로켓 안에서 열한 달을 꼬박 살았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고개만 돌려도 휙휙 바뀌는 게 요즘 세상이라지만, 삶을 음미하고 보듬을 여유가 없었던 듯하다. 늘 내게 잡히는 건 어제의 잔상과 내일의 책임뿐이었다.
시간이 빠르다고 느끼는 건, 허송세월 보내듯 살지는 않았다는 증거이려나. 이렇다 할 영광은 없었더라도 어떤 일도 하지 않고 무엇도 깨치지 않았다면, 기억은 지루한 장면들만 연속으로 포갰을 테니. 간신히 붙든 2025년의 잔상 속에는 명랑한 웃음과 약간의 한숨과 몇 개의 다짐, 그리고 조그마한 성장의 흔적들이 있었다. 독립한 지 이십 년 만에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작업실의 잦은 누수에 이골이 나 정들 틈도 없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소홀했던 건강에 노란 경고등이 들어왔고, 며칠 차이로 아버지의 건강에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안정적인 거주지와 일터, 나와 가족의 건강이라는 인생의 굵직한 주제를 담아 한 해를 채우면서, 나는 시간 속에서 리듬을 잃고 허우적거렸던 내 모습을 봤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의 대사 “뭣이 중헌디?”가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병원에서만 유독 길게 늘어지는 하루를 보내고, 예기치 못한 사건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계획을 허망하게 바라보고, 순식간에 일상이 뒤흔들리는 날들을 보내는 동안에도 삶은 촘촘히 가지를 뻗었다. 그렇게 시간의 물살에 떠밀리듯 살았음에도, 열한 달의 인생을 무사히 채우고 마지막 장을 쓰고 있으니 안도의 숨이 절로 나온다.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로 한 해의 결말을 지을까. 곧, 2025년의 문이 닫힌다. 내게는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갔던 한 해가 쏜 화살보다 빠르게.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