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째 루마니아에서 사역 중인 정홍기(71·사진) 선교사는 최근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통일 선교의 문이 닫힌 것이 아니다. 북한을 위해 기꺼이 짐을 꾸리겠다는 루마니아 사역자들이 있다”며 “루마니아는 평양의 닫힌 문을 열기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오래된 미래이자 베이스캠프”라고 말했다. 정 선교사는 1989년 루마니아 민주화 직후 AFC(그리스도의 대사들)선교회 파송으로 현지에 들어가 활동해왔다.
루마니아 성도들이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데에는 한국 방문에서 경험한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의 영향이 컸다. 루마니아 성도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공산 독재의 어둠을 북한 주민들이 여전히 겪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루마니아는 과거 김일성을 ‘형님’으로 모셨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나라였다. 정 선교사는 “차우셰스쿠는 북한 방문 후 주체사상과 독재 시스템에 매료돼 주민감시 체제와 배급제 그리고 수령 중심 통치까지 그대로 이식했다”며 “루마니아 사람들은 과거 경험으로 북한 주민의 공포와 배고픔을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정 선교사는 북한이 개혁·개방되면 먼저 그 길을 간 루마니아를 닮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89년 유혈 혁명 이후 루마니아 사회가 겪은 급격한 가치관 혼란은 향후 북한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 선교사는 “체제를 전환해도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지 않는다. 혁명 다음 날 어제까지 공산당 간부였던 사람이 민주 투사가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공장 노동자 출신인 정 선교사가 동유럽 낯선 땅에 뿌리내리기까지의 여정은 험난했다. 그는 16세부터 공장에서 일했고 20대 초반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탈곡기에 손이 끼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도 갈 수 없던 시골에서 한밤중 어머니가 건넨 성경을 읽고 회심했다.
29살에 신학생이 된 그는 “세계 선교를 하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고 권한 이근묵 권사의 도움으로 매일 새벽 영어성경 공부 모임에 나갔다. 이후 한국교회의 부흥 현장을 취재하러 온 네덜란드 국영방송 프로듀서 파이케 타르벨드를 우연히 만나면서 유럽선교에 눈을 떴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타르벨드의 현지 코디를 맡아 한경직 조용기 목사 등 당대 지도자들의 인터뷰를 통역하며 시야를 넓혔다. 정 선교사는 “기독교의 본산인 유럽에도 영적 회복이 필요하다는 말에 유럽행을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93년 무작정 루마니아 땅을 밟은 그는 가르치기보다는 배우기를 택했다. 관공서를 찾아가 긴 줄을 서고 공산주의 관료제를 맞닥뜨리면서 병원장과 경찰국장 등 주류 사회 리더들과 교분을 쌓았다. 이를 통해 2004년부터 기독교와 사회 포럼을 주도하며 현지 지식인과 정계 인사들에게 민주주의와 기독교 리더십을 전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50대 중반엔 영국 옥스퍼드선교대학원(OCMS)에서 커뮤니케이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정 선교사는 “공장에서 시작해 옥스퍼드를 지나 지금까지 온 삶의 궤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고백했다.
정 선교사는 자신의 남은 사명이 ‘연결’이라고 봤다. 정 선교사는 “우리가 북한에 직접 갈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북한과 오래된 우정을 간직한 루마니아와 러시아 형제들을 예비해 두셨다”며 “북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지만 옛 형제국가였던 이들은 친구로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