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국산 백신 필요성 절감
2023년 중장기 로드맵 세워
정부 주도 신속 개발 체계 구축
mRNA 백신 2개 이르면 이달 임상
조류독감 백신 2027년 임상 개시
우선 순위 9종 백신도 상용화 추진
2023년 중장기 로드맵 세워
정부 주도 신속 개발 체계 구축
mRNA 백신 2개 이르면 이달 임상
조류독감 백신 2027년 임상 개시
우선 순위 9종 백신도 상용화 추진
2020년 초 미지의 감염병 코로나19가 전 지구촌을 위협하자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모더나는 ‘mRNA 백신’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1년의 짧은 기간에 개발해 인류에 선사했다. 백신 등 신약 개발에 통상 10년 안팎이 소요되는 것에 비해 엄청난 개발 속도였다. 당시 다수의 국가, 제약사들이 자체 코로나 백신 개발 및 지원에 앞다퉈 뛰어들었고 실제 개발엔 평균 7개월이 걸렸다.
한국도 그해 6월 범정부지원위원회를 구성해 치료제·백신 개발에 나섰으나 국산 1호 코로나 백신이 처음 허가받은 것은 2년3개월이 지난 2022년 6월이었다. 그것도 전통적인 재조합 단백질 방식이었고 빠른 개발 속도가 장점인 mRNA 백신은 끝내 실용화를 이루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한국은 ‘백신 주권’에 대한 서러움을 톡톡히 맛봤다. 유행 초창기 백신 물량 확보를 위해 외국 제약사와 협상에 매달렸고 그에 따라 접종 계획을 수차례 바꿔야 했다. 무엇보다 혁신적인 백신 기술 확보에 대한 절실함이 컸다.
공공백신 개발 지원 가속도
정부는 그런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2023년 5월 ‘신종 감염병 대비 중장기 로드맵(2023~2027년)’을 세웠다. 팬데믹 발생 전에 백신 신속 개발 체계를 필수로 구축하고 발생 시 100~200일 안에 빠르게 개발을 추진하는 시스템(다부처·기관 협력, 임상시험 단축, 신속한 인·허가 등)을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감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백신 확보 전쟁이 벌어지는 현실에서 자체 기술로 백신을 개발해 자국민에게 신속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백신 산업을 국가 주요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글로벌 백신 허브로 역할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질병관리청이 2022년부터 국립보건연구원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중심으로 국가 주도 백신 연구개발, 지원에 본격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유행하지는 않지만 팬데믹 우려가 있는 미래 감염병, 국내에서 질병 부담이 큰 미해결 감염병, 생물 테러나 군부대 유행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감염병 대상으로 ‘공공 백신’ 형태로 개발하거나 핵심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대부분 개발에 큰 비용이 들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성이 크지 않아 민간이 기피하는 분야다.
진척이 빠른 일부 감염병 백신은 임상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등 ‘백신 주권’을 향한 발걸음에 속도가 붙고 있다. 아직 국산화 꿈을 못 이룬 코로나19 mRNA 백신 2개는 이르면 이달 안에 인체 대상 임상1상시험에 들어가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안보에 중요한 3세대 두창 및 엠폭스 백신은 내년 중순쯤 임상1상을 시작할 전망이다. 미래 팬데믹 가능성이 높게 예측되는 조류 독감(인플루엔자)은 2027년 초 임상시험이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백신 연구개발 컨트롤타워는 2020년 국립감염병연구소 내에 완공된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다. 생물안전3등급(BL3), 임상시험검체분석기관(GCLP) 등의 고위험 시설 인증을 받고 백신 개발 핵심 자원 및 기술 확보, 효능 평가, 연구 분석 등을 지원한다. 공공백신 개발지원은 센터 건립 후속 사업으로 2022~2026년 480억원의 예산을 받아 진행 중이다.
현재 임상 진입 단계가 가장 빠른 분야는 mRNA백신 플랫폼 개발이다. 정부는 지난 4월 핵심 기술을 보유한 4개 기업(GC녹십자, 유바이오로직스, 한국BMI, 레모넥스)을 선정하고 4년간(2025~2028년) 5052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비임상(동물실험 등)부터 임상3상까지 시료 생산과 공정 개발을 포함한 전주기 지원이 이뤄진다. 임상 단계별 소요 시간 최소화를 위해 일부 중첩 설계로 진행된다. 4개 중 2개에 대한 임상1상시험이 이르면 이달 시작하고 2상을 거쳐 2028년 말까지 임상3상을 마무리하게 된다. 최종 3상시험을 진행하면서 품목 허가와 제품화 준비도 함께 지원한다. 국립보건연구원 mRNA백신개발총괄팀 관계자는 1일 “팬데믹 조기 종식 최우선 요소는 개발 속도가 빠른 mRNA 백신 핵심 기술 보유 여부”라며 “개발에 성공하면 이미 엔데믹(풍토병화)이 됐지만 매년 예방접종이 예상되는 코로나19에 대응하고 다른 감염병 백신 개발 플랫폼 활용으로도 용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팬데믹 위기 시 최대 200일 안 확보
정부는 팬데믹 위기 시 최대 200일 안 초고속으로 백신을 개발할 ‘우선 순위 병원체’ 9개를 선정해 놓은 상황이다. 코로나19와 신종 인플루엔자(조류 독감 포함), 니파 바이러스, 라싸열, 뎅기열,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SFTS), 치쿤구니아열, 신증후군출혈열(한탄 바이러스),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이다. 코로나19와 신종 인플루엔자, RSV, SFTS, 한탄 바이러스 등 위험도 높은 5종은 국내 자체 개발로 신속한 임상 진입과 상용화를 추진한다. 또 라싸열, 뎅기열, 니파 바이러스, 치쿤구니아열 등 국내 유병률이 비교적 낮은 병원체 4종은 해외 기관과의 글로벌 공조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백신연구개발 총괄과 관계자는 “모기 매개 감염병인 치쿤구니아열은 동남아 등에서 주로 유행하는데, 국외 여행이 늘면서 국내로 유입 환자가 증가하고 최근 제주도에서 매개 모기(숲모기) 서식이 확인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서 과일 박쥐에 의해 전파되는 니파 바이러스는 감염되면 치사율이 75%로 매우 높고 치료제가 없어서 대비가 필요하다. 최근 1급 감염병으로 지정됐다”고 덧붙였다. 치쿤구니아열과 라싸열, 뎅기열 백신은 2029년쯤 임상 진입이 목표다. 백신 플랫폼은 mRNA와 재조합 단백질 등 다양하게 적용된다.
이밖에 3세대 두창 및 엠폭스, 군부대에서 유행하는 아데노55바이러스 백신 등은 공공백신 형태로 전주기 개발이 이뤄진다. 두창 및 엠폭스 백신은 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HK이노엔과 공동연구를 통해 내년 중순 임상 개시가 예상된다. 아울러 차세대 결핵이나 유행성이하선염(볼거리) 등 일부 미해결 감염병은 필수예방접종(NIP) 개선 후속 사업으로 2027년부터 본격화될 예정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