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1월 2일 전남 목포시에서 최초의 시민장이 치러졌다. 주인공은 ‘한국 고아들의 어머니’로 불린 윤학자(1912~1968) 여사다. 본명 다우치 지즈코(田內千鶴子)로 일본 출신인 그는 장례식에 당시 목포 시민 16만명 중 4분의 1이 참석할 만큼 깊은 존경을 받았다.
윤 여사는 1919년 조선총독부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목포에 왔다. 목포에서 학교를 마친 뒤 음악 교사로 근무하던 1936년, 고등학교 은사의 소개로 공생원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공생원은 목포의 ‘거지 대장’으로 불리던 전도사 윤치호가 1928년 유달산 자락에 세운 고아 보호시설이다. 그는 윤치호와 사랑에 빠져 1938년 결혼하고, 남편의 성과 원래 이름의 두 글자를 따 ‘윤학자’로 개명했다.
해방 이후에도 목포에 남아 공생원을 운영하던 그는 6·25전쟁 중 남편을 잃었다. 굶주린 원생들을 위해 식량을 구하러 광주에 갔던 윤치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윤 여사는 공생원을 지키며 끝까지 아이들을 돌봤다. 30여년간 3000명 넘는 고아들을 돌봤고, 네 명의 자녀도 원생들과 똑같이 먹이고 입혔다.
윤 여사는 1963년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정부 수립 이후 외국인 여성 최초이자,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 일본 국적의 여성 첫 수훈자였다. 그의 삶은 1995년 한일 합작영화 ‘사랑의 묵시록’으로 제작됐고, 일본에서 TV로 방영돼 많은 일본인에게 감동을 줬다.
윤 여사 별세 후 공생원은 장남 윤기씨를 비롯한 자손들이 운영 중이다. 목포와 서울에 장애인요양원, 재활원, 기술교육원 등을 설립했고, 일본 도쿄·오사카 등 5곳에는 재일동포 독거노인 쉼터를 마련했다.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국립극장이 12월 11~15일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음악극 ‘공생,원’(포스터)은 윤 여사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공생원에서 자란 ‘범치’의 시선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공생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윤 여사의 여정을 담았다.
대본은 뮤지컬 ‘날아라, 박씨!’와 음악극 ‘합★체’ 등을 쓴 작가 정준이 맡았다. 음악감독 겸 싱어송라이터인 황경은이 6성부 아카펠라 넘버와 국악기와 양악기가 어우러진 음악을 선보인다. 연출은 뮤지컬 ‘트레이스 유’ ‘글루미 선데이’ 등을 연출한 김달중이 맡았다. 윤 여사 역은 배우 송상은과 박미용이 각각 젊은 시절과 나이 든 모습을 맡아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범치 역은 배우 임진웅이 맡았다.
접근성 서비스를 대폭 확대한 점이 눈에 띈다. 일괄 수어 통역 대신 배역별 전담 수어 통역사 6명을 배정해, 등장인물의 감정을 몰입도 있게 전달한다. 국립극장 최초로 스마트 안경을 도입해 관객이 착용한 기기를 통해 대사와 무대 상황이 실시간 자막으로 제공된다.
윤 여사의 외손녀이자 현재 공생재활원을 이끄는 정애라 원장은 30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번 작품을 통해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윤학자의 정신이 요즘 세대에 좋은 영향을 끼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공연 기간 공생원 출신과 후원회에서 매일 100명 이상 보러 갈 예정”이라며 “과거 공생원에는 장애 원생이 많았었던 만큼 이번 작품을 무장애 공연으로 선보이는 것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