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회는 두 개의 이름으로 불린다. 하나는 여수 운화교회(한경철 목사), 다른 하나는 ‘이하여백’이다. 한 지인이 여수의 작은 교회가 특색이 있다고 소개했다. 처음엔 ‘이화여백교회’로 잘못 알아들었다. 지도 검색에 나오지 않아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알았다. ‘이화’가 아니라 ‘이하’였다. ‘이 아래에는 빈칸이 있다’는 뜻의 이하여백이었다. 이하여백은 이 교회 문화사역 공간인 갤러리와 카페의 이름이었다.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의 변신
지난 14일 KTX를 타고 여수로 향했다. 한경철 목사가 여수엑스포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10여분쯤 가더니 다 왔다며 강가 도로에 주차했는데 교회가 어디 있는지 주변을 살펴야 했다. 그만큼 눈에 띄는 건물이 아니었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 사이, 빨간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엔 약품 회사, 오른쪽엔 목재상 간판이 있었다. 십자가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중에 십자가가 밖에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는 철제 십자가가 벽면에 붙어 있었다. 안내판은 A4 용지 두 장 크기였다. 건물 입구 옆 낮은 담장에 붙어 있어 시선을 끌지 못했는데 하나는 ‘여수 운화교회’, 다른 하나엔 ‘이하여백’이라 적혀 있었다.
그저 평범한 광경이지만 그런데도 느낌이 있었다. 건물 입구 위에 있는 비정형·비대칭의 캐노피, 낮은 담장, 그 뒤로 보이는 유리 파티션, 그리고 그 위에 붙은 전시 포스터가 이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켰다.
지역 노인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경사로를 따라 건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좁은 복도가 나타났고 건물 가장 안쪽으로 강단이 보였다. 강단은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으로 환했다. 벽면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벽 앞에는 아담한 강대상이 있었고 우측엔 둥근 가림막이 있었다. 그 앞엔 줄지어 정렬된 회중석과 성경책 등을 올려둘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예배당의 실내였다.
회중석 양쪽 흰 벽면에는 작품이 걸려 있었다. 이은채 작가의 작품으로 다음 달 14일까지 전시된다고 했다. 한 목사는 “서울의 한 갤러리와 협력해 붉은 산수화로 알려진 이세현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보다가 시선을 뒤로 돌렸다. 거기엔 카페가 있었다. 뒤쪽 전체가 카페 주방이었다. 에스프레소 커피 추출기기를 비롯해 가격이 적힌 메뉴판도 보였다. 이렇게 예배당 갤러리 카페가 각각 전형적이면서 하나의 특별한 공간을 연출했다. 공간은 소박하면서도 세련됐다. 그래서 이색적이고 강한 인상을 남겼다. 디자인의 힘이었다.
공간 디자인의 힘
교회는 햇빛을 적극 활용했다. 교회는 기존 건물에서 강단 방향으로 증축했고 벽면을 늘리면서 천장 대신 천창을 냈다. 그 창의 프레임을 격자로 설계했다. 그 프레임을 통과한 빛은 강단 위로 움직이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리우는 그림자였다.
강단 벽면은 스프레이 방식으로 도장해 울퉁불퉁한 질감을 살렸다. 그 벽면에 가는 철제 십자가를 붙였다. 건물 외벽 십자가와 동일한 모양이었다. 가는 철제 십자가에 대해 한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80~90년대에는 빨간 네온사인 십자가가 ‘여기가 교회입니다’라고 외치는 듯했죠.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대개의 교회 문은 평소에 잠겼습니다. 교회에 오라는 건지, 오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히려 겸손과 순종을 나타내고 십자가 자체가 아닌 십자가 위에 세워진 교회가 되고자 절제된 십자가를 선택했습니다.”
강단 벽면에는 천장부터 바닥까지 내려오는 긴 유리창이 있었다. 거친 회색 질감 사이로 창밖 풍경이 선명했다. 이 창은 가운데에 있지 않고 우측으로 치우쳐 있었다.
성경 스토리를 공간에 구현
강단은 전반적으로 비대칭을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사물의 비중을 활용해 균형을 잡았다. 작은 강대상, 가는 십자가, 화분, 모니터 스피커가 우측 둥근 가림막 벽과 비슷한 무게감으로 배치돼 있었다. 회중석의 검은 철제 의자들은 공간 분위기를 무겁고 차분하게 만들었다.
교회로 알고 들어온 이들에겐 예배당으로 보였지만, 교회인지 모르고 갤러리를 찾는 이들에겐 단순한 공간 인테리어처럼 보일 수 있었다. 어떤 연인은 전시를 보러 왔다가 남자친구가 악기를 발견하고서야 이곳이 교회임을 알아채고 서둘러 나갔다고 했다. 한 목사는 웃으며 설명했다. “그 친구가 우측 둥근 벽 뒤편에 숨겨 놓은 피아노 드럼 키보드를 보고 교회라고 알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는 악기를 가리고 예배 때만 드러내도록 설계했다. 교회를 다니는 이들에겐 정리돼 보여 좋았고, 교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교회 이미지를 최소화해 편안함을 주었다.
공간 디자인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디자이너가 맡았다고 했다. 그는 예배당 공사를 처음 맡았고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 20여개 교회에서 직접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과 내려놓아도 되는 것을 분류했다.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건축 재료를 돌이나 철로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강단 벽면의 울퉁불퉁한 표면, 교회 입구 손잡이 등이 돌의 개념이고, 철제 십자가와 철제 의자는 철의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디자이너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공간에 표현했다. 천장을 매끈하게 처리하지 않고 사각 돌출을 넣은 것은 구름 기둥이고, 벽면 세로 긴 창은 불기둥이다. 이 창은 낮에는 자연광을 들이고, 밤에는 간접조명을 켜면 불기둥의 이미지가 더 또렷해진다고 했다.
예배당 바닥은 샌드베이지색이다. 기존 갈라진 회색 콘크리트 바닥 위에 투명 에폭시를 발랐는데, 마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색으로 자리 잡았다.
건물 내부, 구성원의 성숙에 초점
운화교회는 건축된 지 30년이 넘었다. 낡은 빨간 벽돌 예배당은 작은 교회라는 인식 이전에 단순히 건물 자체로도 시민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2016년 한 목사가 부임했을 때는 전반적인 보수가 필요했다. 새로 짓는 것이 나을지, 리노베이션을 할지 고민해야 했고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은 리노베이션을 선택했다.
2021년 리노베이션을 추진하며 방향을 정했다. ‘교회 성도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들어왔다 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 당시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교회가 감염의 온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를 덜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교회가 친근하게 느껴지길 바랐다. 전시회는 작품을 통해 모르는 사람끼리도 대화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는 말이 많았다고 했다. ‘리노베이션 할 돈이면 교회 외관을 바꾸고 실내는 장의자 정도만 새로 들이면 되지, 왜 겉은 두고 안을 갤러리처럼 바꾸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한 목사는 교회도 구성원이 변화해야 하듯 건물도 외부보다 내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가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르는 사람들, 서울 사람들도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보고 찾아왔다. 찾아온 사람들이 운화교회를 알렸고 그래서 유명해졌다. 지난해에는 연인원 50여명이 예배를 함께했다.
갤러리이자 카페 기능도 자리 잡았지만 한 목사는 여전히 목회자다. “교회가 숫자적인 부흥도 분명히 있어야 하겠지만 앞으로 작은 영세 교회들이 살아가려면 구성원들의 성숙이 우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의 믿음 또는 그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같이 공유하고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가 되고 싶습니다.”
여수=글·사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