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옛길에서 선한 길을 찾으라

입력 2025-11-29 00:37

1930년대 건축물 중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본래 목적대로 사용되는 곳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세어 보지는 않았어도 많지 않다는 건 추측할 수 있다. 마침 이런 옛 건물들이 한데 모여 있는 지역이 있다.

바로 서울 중구의 ‘정동’이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시작하는 이 거리는 근현대사의 유산을 곳곳에 품고 있으면서도 과거와 현대가 잘 어우러져 있다.

지난 26일 대학 후배를 만나기 위해 이 길 중간에 있는 신아기념관을 찾았다. 적색 벽돌로 지어진, 정동을 걸을 때마다 눈길이 가는 바로 그 건물이다. 1930년대 지어졌다고 알려진 빌딩은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원래 미국 ‘싱거 재봉틀 회사’ 한국지부 사옥으로 지어졌다. 당초 회사는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을 지었다. 지금보다는 아담한 규모였던 셈이다.

긴 시간이 지나 1975년이 되면서 건물의 새 주인이 된 신아일보가 증축을 한다. 사세 확장으로 3층과 4층을 새로 지었고 그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1980년 신군부가 언론 통폐합을 하면서 신문사는 폐간됐고 현재는 기념관으로 변했다. 기념 공간이 1층에 작게 있을 뿐 대부분은 사무실과 카페 등이 입주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민과 한층 가까워졌다. 정동의 건물들 중에서도 유독 인도와 맞닿아 있는 이 건물은 오래도록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아 왔다.

이국적이면서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물 앞에서 누구라도 한 번쯤 사진 한 장 찍어봤을 법하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본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출입문을 여는 순간 집이 지닌 세월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듯했다. 여느 건물에 드나들 때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문을 연 것일까. 2층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서자 정동 전경이 펼쳐졌다.

고작 몇 m 올라왔을 뿐인데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사뭇 달라 보였다. 돌담길을 따라 총총히 걷는 이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차가 지나가며 만든 바람에 일어난 낙엽의 노란 여운에도 한동안 시선이 멈췄다.

문득 연희전문학교 기숙사(연세대 핀슨홀) 다락방에서 윤동주가 쓴 산문 ‘달을 쏘다’가 떠올랐다.

핀슨홀 2층에 지금도 남아 있는 시인의 방에선 해질녘 달과 별이 뜨는 게 보인다. 그때도 그랬을 터. 1939년 1월 23일 발표한 글의 도입부는 이렇다.

“나의 누추한 방이 달빛에 잠겨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보다도 오히려 슬픈 선창이 되는 것이다. 좀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쏘다.”

정동의 오랜 건물에서 내려다본 전경은 아련한 기억의 끄트머리에 흩어져 있던 시인의 글을 끄집어낼 만큼 운치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정동 거리의 역사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깊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몰락,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민주화와 경제 성장 등 우리 현대사의 모든 변화상이 묻어 있어서다. 이 거리가 기억할 새로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선교 150년, 더 나아가 200년을 향하는 한국교회는 20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세계의 여러 교회와 비교하면 무척 젊다. 우리 교회가 걸어야 할 내일에 더욱 큰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예레미야 6장 16절의 한 대목으로 옛길에서 선한 길을 찾으라는 여호와의 권면을 담고 있다.

역사의 긴 흔적이 켜켜이 쌓인 거리를 보며 내일을 생각한다. 정동의 낡은 벽돌이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 왔듯 우리도 흔들리지 않는 선한 길로 들어서야 한다.

미래의 모습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옛길에서 선한 길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따라 걸을 뿐이다.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