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은 뭐 없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다 가는 거예요.” 김씨 할아버지는 멋쩍다는 듯 말했다. 옆 사람과 방금까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묻자 나온 대답이다. 올해 여든일곱이라는 그는 아침 댓바람부터 줄곧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정자 계단에 앉아 있었다. 가을 끝자락이라 제법 바람이 찼다. 돌계단이 시리진 않냐는 질문에 깔고 앉은 스티로폼 포장지를 가리켰다. 집에서 직접 들고 온 모양이었다.
김씨가 탑골공원을 찾기 시작한 건 지난 봄이다. 가을쯤 아내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가고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아내 없이 빈방에서 우두커니 TV만 바라보고 있노라니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출가한 자식들이 동네 복지센터라도 가보라고 했지만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 관계를 맺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오전 6시20분에 버스를 타고 집을 나서 저녁까지 내내 공원 정자에 머물다 일과를 마친다.
비단 외로움 때문만은 아니다. 손에 쥔 구깃한 무료급식 대기표 역시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 이유다. 오전 7시에 공원에 도착해 받은 그 종이에는 3번째 줄 13번째를 뜻하는 숫자가 적혔다. 100명씩 5줄을 서는 중에 절반 안쪽이니 그래도 나쁘지 않은 번호다. 100번대 순번을 받으려면 새벽 4시 반 내지는 5시부터 와 있어야 한다. 버스도 안 다니는 그 시간에 올 수 있는 건 공원 근처 고시원에 사는 노인들뿐이라고 했다.
오전 11시쯤 김씨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에 앉아 있던 다른 이들도 하나둘 정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백명 노인과 노숙인, 전동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공원 정문 앞에 도열해 도시락을 기다리는 모습은 아는 사람은 익숙한 진풍경이다. 발걸음이 잰 이들은 먼저 도시락을 받아 근처 다른 급식소로 뜀박질한다. 한 노인은 도시락 5개를 챙겨 2000원씩 팔아먹는 젊은이도 있더라며 얼굴을 붉혔다.
노인들이 오는 곳은 다양하다. 무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깝게는 서울시내부터 멀게는 인천, 더 멀게는 충남 천안에서도 온다. 일흔을 갓 넘긴 비교적 젊은 노인부터 100세도 넘은 1920년대생 노인까지 나이대도 제각각이다. 이들은 종종 말을 섞지만 이름은 좀체 묻지 않는다. 앞서 적었듯 관계맺기가 부담스러워서다. 익명이 보장된 채로 외로움을 달래는, 이를테면 그들 나름의 오프라인 랜덤채팅방인 셈이다.
그들이 탑골공원에 모이는 건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오래 앉지 못하게 벤치 등받이를 없애고, 모일 곳을 없애려 녹지 공간을 억지로 늘려놨지만 그걸로 노인들을 공원 밖으로 흩어놓진 못한다. 돈을 지불 않고선 온전히 쉴 자격조차 얻을 수 없는 이 사회에서 그들이 머무를 곳은 여기뿐이다. 10분만 걸으면 빌딩 숲속 직장인과 관광객이 오가는 번드르르한 카페와 식당이 수두룩하지만 그들에겐 닿지 않는 세상이다.
공원의 노인들은 종종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지난 8월 공원 북문 바깥에서 장기 두던 이들이 쫓겨난 것도 그랬다. 사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예전에도 노인들은 공원 안에 모여 장기를 뒀지만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공원 담벼락 바깥으로 쫓겨나다시피 했다. 어찌 됐든 이번 조치 뒤 장기판 주변에 모여들던 만취한 노숙인과 노상방뇨 무리가 상당수 사라졌단 소식에 사람들은 박수부터 보냈다.
그러나 냄새나는 것을 덮는다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노인들의 장기판을 엎어버리는 것으로는 사실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게 없다는 얘기다. 오늘날 대책 없이 빈곤에 내몰리고, 외로움을 달랠 공동체조차 해체된 이들은 공원 너머에도 넘치게 많기 때문이다. 우울한 표정으로 탑골공원에 앉아 있는 노인들의 풍경은 얼핏 낯설고 이질적일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사회가 감당 못한 여러 모순을 민낯으로 드러내고 있다.
탑골공원에서 종로3가역 쪽으로 걷다보면 종묘공원이 나온다. 탑골공원에서 장기 두던 20~30명은 이곳으로 옮겨왔다. 무료급식을 받느라 하루 두어 번 이상 노인의 느린 걸음으로 탑골공원 쪽을 오가야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장기말과 바둑알이 번갈아 ‘딱, 딱’ 소리를 내며 분주한 사이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며 아는 척을 하고 웃음도 짓는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그들의 일상 역시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 미소를 보며 어쩌면 해답이 먼 데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효석 영상센터 뉴미디어팀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