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이 지금처럼 교육한다면 10년 뒤 얼마나 살아남을까. 아마 절반도 못 남을 거다. 흔히 말하는 학령인구 감소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앞에 닥친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학의 존재 이유가 점차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도성(73) 한동대 총장은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으로 손꼽히는 미국 미네르바대와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미네르바식 교양교육 커리큘럼’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국내 4년제 일반대 중엔 최초로 시험과 과제가 없고 AI가 학생의 수업 참여도와 학습목표 달성도를 종합 평가하는 미네르바식 교육 도입에 나선 것이다. 그는 내년 2월 퇴임을 앞두고 AI 시대 속 한동대의 교육 철학과 전략을 담은 책 ‘인공지능(AI) 시대, 전인지능(HI)으로 답하다’(두란노)도 펴냈다.
AI 시대 대학 변화의 길을 한발 앞서 걷고 있는 최 총장의 눈에 최근 대학가에서 불거진 ‘생성형 AI 부정행위’ 사태와 여러 현실은 어떻게 비쳤을까. 지난 21일 경북 포항 한동대 총장실에서 만난 최 총장은 시대에 맞지 않는 대학의 평가 도구의 문제 등을 날카롭게 짚으며 대학 교육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역설했다. AI가 바꿀 대학 풍경과 문화에 관한 의견, 그가 걸어온 삶의 여정과 그 속의 신앙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최근 대학가 AI 부정행위 사태를 어떻게 보나.
“AI에 물어보면 2~3초 안에 답이 나오는 세상이다. 이전처럼 누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정답을 맞히는가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아주 어리석은 일이 된 셈이다. 이제는 대학을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라고 정의하는 게 우스꽝스러워진 시대다.”
-대학은 명실상부 ‘지성의 전당’ 아닌가.
“두 달 전 미국 기독교 대학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이때 미국기독교대학협의회 모임에 초청을 받았는데 내가 이런 질문을 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학자이자 총장인 여러분 가운데 대다수는 대학이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라 생각할 거다. 이런 대학이 10년 후 얼마나 존재할 것 같으냐’고. 이들에게 내가 준 답은 ‘반도 안 남는다’는 것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10년 뒤에도 대학에서 지금처럼 교육하면 과연 몇이나 살아남겠는가. 2015년을 떠올려보라. 당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게 변했다. 이전에 ‘학문 반감기(半減期)’가 12년이었다면 지금은 6개월이라고 한다. 일부 정보기술(IT) 분야에선 하루에 불과하단다. 당장 내일이면 쓸모없는 지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0년 뒤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학은 뭘 가르쳐야 하나.
“대학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곳’이 돼야 한다. ‘세상을 선한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십을 가진 진정한 사회인’을 육성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려면 전인교육(全人敎育)이 필요하다. 특히 AI가 주는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해내는 능력을 갖추도록 교육해야 한다.
지난해 한동대 교육철학으로 전인지능(HI)을 고안한 이유다. HI는 지식·기술을 넘어 지성과 인성, 영성을 함께 세우는 것이다. ‘왜 이 답인지’ ‘이 답이 누구에게 영향을 주는지’ ‘이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돼 가는지’를 묻는 힘을 길러주는 거다. AI 시대의 교육은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는 사람, 다시 말해 ‘사람다움’을 지켜내는 사람을 세워내는 것이어야 한다. 요즘 어떤 AI가 가장 인기가 높은 줄 아느냐.”
-뭐가 가장 인기일까.
“음란물 AI다. 본능이라기보단 사용자의 가치관이 아직 혼란스러워서 그렇다고 본다. AI 윤리에 관한 구체적 방향이 나오면 생명을 구하는 방향 등으로 더 활발히 활용되리라 본다.”
-AI 윤리·리터러시 강의도 이뤄지나.
“해당 수업들도 개설할 예정이지만 특정 수업이 아닌 대학의 모든 수업에 윤리관이 전제돼야 한다고 본다. 윤리 수업을 듣는다고 저절로 윤리적이 되는 건 아니다. 윤리에 대한 부분은 체화돼야 한다.”
-한동대는 1995년 개교 이후 30년간 ‘무감독 양심시험’을 치렀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시험에 응하였음을 확인합니다.’ 한동대 시험답안용지에 적힌 문구다. 한 교수가 ‘이게 참 무서운 문장’이라고 하더라. ‘불꽃 같은 눈동자로 하나님이 보는데 거짓말할 수 있겠냐’는 거다(웃음). 한데 단지 이 문장 때문에 부정행위를 안 하는 건 아니다. 우리 학생들은 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손해를 보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대학원에서 정직을 지킨 한 졸업생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졸업생이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시험을 보는데 적잖은 이들이 스마트폰을 참고해 답안을 작성하더란다. 그는 공부한 대로 답안지를 썼다. 이 이야기를 자녀에게 들은 아버지가 ‘그러면 너만 손해 아니냐’고 물으니 졸업생이 한 말이 걸작이다. ‘저는 우리 학교에서 그렇게 배우지 않았어요.’”
-올해 한동대 개교 30주년이다.
“지난 30년은 그야말로 ‘하나님 은혜의 역사’였다. 하나님이 동행하고 이끌어주며 필요한 것을 공급했기에 오늘의 한동대가 있다. 어떻게 보면 고난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고난은 보이지 않는 축복’ 아닌가.”
-신앙고백 같은 소감이다.
“하하! 잘 따져보라. 나는 재무금융 전공자다. 기업이 언제 망하는 줄 아는가. 돈이 많을 때 망한다. 돈이 없을 때 투자하면 대체로 성공하는데 그 반대 조건에선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가장 잘 될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좋아하는 성경 구절도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이다.
한동대의 향후 30년도 쉬운 길은 없을 거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함께하면 어려울 것도 없다. 후대 총장에게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이 하려고 하지 마. 하나님이 하신다.’”
최 총장은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뉴욕주립대(버팔로)에서 정년 보장 교수로 재직하다 모교의 제안으로 1994년 귀국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8년엔 청와대 제안으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맡으며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뒀다.
그는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안정된 직장을 떠나는 용단을 내린 배경엔 기도가 있었다”며 “하나님은 삶의 변곡점마다 항상 말씀을 들려주셨다”고 했다. 최 총장은 서울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 장로이기도 하다.
-총장 연임을 포기한 것도 기도의 결과인가.
“작년 12월 임기 연임 의사를 밝힐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글로컬대학에 선정되면서 사업이 아직 3년 반 정도 남은 데다 학교를 한 단계 높이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연임하려 했다. 그런데 계속 마음이 불편하더라. 평소처럼 성경을 읽는데 민수기 20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이끈 모세에게 ‘너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는 부분이다.
마침 한동대 역시 30년을 지나 새 장을 여는 시기였다. 개교 이래 30년이 광야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더욱 복잡한 환경에서 학교의 수준을 높일 리더십이 필요했다. 여기엔 나보다 젊은 지도자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기도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하나님이 ‘여기까지다’란 마음을 주는 거 같았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신기하게도 이후 행보는 전혀 생각지 않고 있다. 한동대 총장직을 어떻게 마무리 잘할까만 신경 쓰고 있다. 다음 단계 역시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하나님 인도대로 가려고 한다. 아직은 말씀이 없어서 조금 초조한 마음이 들긴 한다.(웃음)”
포항=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