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그 편지를 읽으며 우리 부부도 함께 울었다. 10년 동안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고 계셨다. 돌같이 굳은 마음을 녹이시는 데 10년이 걸렸다.
일주일 전 다녀왔지만, 그의 얼굴을 보고 안아주고 싶었다. 그를 보러 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한달음에 달려간 기분이었다. 우리는 깊게 포옹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했다.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는 무척 기뻐했다.
그는 점점 변했다. 우리가 오는 날을 기다리며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도소 안에서 청소 같은 궂은일을 맡았다.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해 배우며 삶이 보람 있게 변해갔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우리가 사 온 음식을 잘 먹었는데, 그는 늘 콜라 한 캔 외에 다른 것은 손대지 않았다. 한참 지나 조심스레 이유를 물었다. “먹고는 싶지만, 이 먼 길 오시려면 경비도 많이 드실 텐데 넉넉하지 못한 선교회 형편에 제가 그럴 수 없어요.”
순간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착하고 깊은 사람이 왜 이런 곳에서 인생을 보내야 하나 안타까웠다.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은 험악하고 무서울 거로 생각했다. 간혹 그런 이도 있었지만 우리가 만난 이들 중엔 그런 사람은 없었다. 이 형제도 온순하고 의리 깊은 청년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25년쯤 지난 어느 날, 면회실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 어두운 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무슨 일이냐 묻자 성경공부 중 기도하다 자신이 죽인 형제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 가족의 마음이 느껴져 너무 괴로웠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그는 꺼이꺼이 울며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우리는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함께 울었다. 그때 마음속에 ‘이제 하나님이 이 형제에게 무언가 하시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2주 후, 선교회 사무실로 그의 전화가 왔다. “목사님, 정부에서 감형법이 통과돼 신청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여러 서류가 필요했다. 오네시모(Onecimo) 선교회는 그가 공부한 성경 내용과 변화된 삶을 정리해 제출했다. 1년도 되지 않아 그는 심사를 통과했고 종신형을 받았던 형제가 마침내 교도소에서 나왔다.
그는 32년을 살았다. 기적이었다. 하나님은 늘 그와 함께하시며 일하고 계셨다. 그는 시민권자가 아니어서 한국으로 추방됐고,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신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여정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는 반드시 열매 맺는다는 믿음을 새겨 주었다. 그가 한국 땅에서 믿음 안에 뿌리내리고, 또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또 다른 형제를 만나러 길을 나선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곳으로.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