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내 평생 소원 이것뿐’ 450장(통376)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1장 20~27절
말씀 : 현대인들은 시간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목표지향적인 사람들은 매시간과 분, 초를 정해놓고 삽니다. 심지어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조차 아까워할 때가 있습니다. ‘바쁘다’는 말이 인사처럼 돼버렸고 바쁜 게 당연한 것처럼 살아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잠시 멈춰 생각해야 합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바쁘게 살아가는가’ ’왜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속에서 늘 압박감과 부담감, 스트레스를 느끼며 사는가.’
오늘 본문은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합니다. 본문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 예수님과 마르다의 대화입니다. 22절을 보면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은 뒤에도 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하시면 무언가 이루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에 대해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그 말씀을 마지막 날에 있을 ‘일반 부활’로 이해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에 마르다는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장면은 언뜻 보면 대화가 어긋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 전체를 드러내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는 부활의 주, 생명의 주로서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밝히시며 믿는 자들에게 참된 생명을 주실 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것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이미 우리 삶 속에 오셔서, 사망과 죄의 권세를 깨뜨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진리는 단지 우리가 죽은 후 천국에 가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재 삶이 이미 부활과 생명의 삶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죽음 이후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는 삶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여전히 시간의 제약을 받지만, 동시에 영원한 생명 속에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과 영생의 삶은 단절된 두 세계가 아니라, 서로 맞닿아 있고 겹쳐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여기서부터 영생을 누릴 수 있고 또 누려야 합니다.
이 땅의 시간은 곧 영원한 주님의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오늘 이 순간부터라도 주님의 시간으로 채워가야 합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 이 세상의 어떤 일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인생은 탄생과 죽음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은 이미 영원한 시간, 주님의 시간 속에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주님 안에서 영생을 나눠 받았기에 시간에 쫓기는 삶이 아니라 영원한 시간 속에서 주님의 일을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 : 부활과 생명의 주님, 우리 가족들이 주님의 시간을 사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한상화 목사 (아신대 조직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