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석기 (12) 엘살바도르 방문… 교도소 사역자로 섬기게 된 보리스

입력 2025-11-20 03:06
2000년 엘살바도르를 방문한 김석기 목사 부부와 이들에게 방과 식사를 제공한 파블로 집사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

보리스 선교사의 동역자로 나이 지긋한 ‘파블로’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우리를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험악하기로 유명한 세코트 교도소로 안내했다. 그곳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열악했다.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냄새가 났다. 빽빽하게 널린 빨래들이 하늘을 가리고, 좁고 습한 공간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옷을 제대로 걸치지 않은 몸들엔 다리부터 얼굴까지 가득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의 눈을 확인하기 위해 한참 들여다 봐야 할 정도였다. 이곳에 비하면 미국의 교도소는 천국 같았다. 무더위와 악취, 공포가 가득한 그 공간을 보니 ‘지옥’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재소자들은 수형복이 아닌 자기 옷을 입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정부에 예산이 없어 수형복을 지급하지 못해 집이나 지인에게서 받은 옷을 입는다고 했다. 교도소장은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의약품 지원을 부탁했다.

먼저 여자 교도소에 들어갔다. 약 200~300명의 재소자 앞에서 나는 말씀을 전했고 보리스가 통역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교도관이 문을 열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병든 재소자들을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약이 없어 치료할 방법이 없기에, 말씀을 전하러 오는 사역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주님의 긍휼하심을 전할 기회라 여기고 나는 담대하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수 기도를 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지만, 주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 주셨다.

이어서 남자 교도소로 이동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길이 좁았다. 재소자들은 상의를 벗고 팬티만 입은 채 복도에 앉아 있었다. 아내에겐 큰 부담이었지만, 우리는 무사히 말씀을 전하고 기도한 뒤 나왔다. 교도소장은 돌아가는 길에 다시 약품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파블로 부부와 식탁에 둘러앉아 간증을 나누었다. 그들에겐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청소년기에 마약에 빠져 갱단과 연관되어 살해당했고, 작은아들 역시 마약 과다복용으로 죽었다고 했다. 두 아들을 다 잃은 슬픔 속에서 주님께 돌아온 그들은 선교사를 섬기고 마약 중독자들을 돕는 사역에 헌신하게 되었다. 파블로는 고백했다. “아들은 잃었지만, 더 많은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눈물을 삼켰다.

식사 후 그가 조용히 부탁했다. “오늘 밤, 함께 가 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와 함께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을 두 시간이나 달려 작은 집에 도착했다. 그곳은 약 20명의 청소년이 모여 있는 마약 재활 기관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주님의 사랑을 전했다.

다음 날, 보리스가 사는 작은 방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해 졸업 후 재활 기관사를 하고 싶어했다. 나는 그의 신학 공부를 돕고 교도소 사역을 권유했다. 이후 우리는 세 차례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교도소 사역을 함께했고, 보리스는 신학 공부를 마친 후 교도소 사역자로 섬기게 되었다.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