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지문에 긴장하고 ‘범 내려온다’ 문항서 당황하고

입력 2025-11-14 00:09 수정 2025-11-14 00:34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18~21번 지문에 나온 '수궁가'. 연합뉴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선 문제풀이에 몰두하던 수험생 마음을 혼란케 한 이색 문항들이 눈길을 끌었다. 수험생들은 국어 영역 지문 수궁가의 “범이 내려온다”는 대목에 흥미를 느끼다가도, 국어·영어 영역에 잇달아 나온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지문에 혼란스러워했다.

13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한 국어 영역 18~21번 문항에는 별주부전을 원작으로 한 판소리 ‘수궁가’가 지문으로 나왔다. 해당 문항에는 엇모리장단으로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승이 내려온다”를 읊는 구절이 담겼다.

이를 두고 수험생들 사이에선 국악밴드 이날치가 2020년 발매한 음원 ‘범 내려온다’를 떠올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당시 “범이 내려온다”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노래는 한국관광공사의 2020년 홍보 영상에 담겨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왔다.

해당 지문은 EBS 수능 연계 교재에 수록되어 있어 문제 난도는 높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공교롭게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떠올린 학생들 사이에선 집중력이 흐트러졌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이날 수험생 커뮤니티에서도 “머릿속에 노랫말이 종 칠 때까지 계속 울렸다” “노래 생각나서 집중력이 다 깨졌다” “웃느라 시험 망했다” 등의 사연이 올라왔다. 사회탐구 사회문화 영역에선 최근 화제작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를 떠올리는 문항이 나왔다는 반응도 올라왔다.

올해 수능에서 수험생의 머릿속을 뒤흔든 문항에는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등장했다. 1교시 국어 영역에선 시험 초반인 14~17번 문항부터 인격 동일성에 대한 칸트, 스트로슨, 롱게네스의 견해를 담은 약 1600자 분량의 지문이 나왔다. 수험생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내가 동일한 자아로 인식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주제에 관한 세 철학자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파악해야 했다. 수능특강 교재와 연계된 지문으로 출제됐지만 추상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 난도가 높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해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는 상황을 가정한 뒤 세 철학자의 적절한 평가를 구하라는 17번 문항은 고난도 문제로 꼽혔다. 배점 3점에 해당하는 고득점 문제였던 터라 문제 풀이에 더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오후 3교시 영어 영역에서 고난도 문제로 꼽히는 빈칸 추론에선 칸트가 견지한 법치주의(Rule of Law)에 대한 해설이 담겼다. 칸트는 법이 폭력적이고 대립하는 인간의 본성을 억눌러 사회의 안전과 평화, 자유를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수험생은 칸트의 관점을 바탕으로 문맥에 맞는 빈칸을 채워야 했다.

EBS는 해당 문항을 풀이가 까다로운 문항으로 평가했다. EBS 교사단은 “글의 중심 내용을 정확히 이해한 학생이라면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빈칸 앞에 부정 표현인 ‘cannot be’가 나와 글 주제와 반대되는 선택지를 골라야 한다는 점에서 수험생 사이의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