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산업이 심각한 공급과잉에 빠졌다. 전 세계 1위 전기차시장이지만 생산이 수요의 배가 넘는 탓에 지난해 흑자를 낸 전기차업체는 단 4곳에 불과하다. 남는 전기차를 헐값에 수출 물량으로 돌리면서 해외시장 가격 하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완성차 생산능력은 연간 약 5507만대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난해 내수 판매량은 2690만대 수준에 그쳤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전체 자동차업체의 공장 실질 가동률을 50% 수준으로 보고 있다. 통상 업계에선 75% 이하일 때 과잉설비로 간주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중국 정부가 전기차 생산에 ‘올인’하면서 결국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2009년 이미 경쟁사에 뒤처진 내연기관차를 대신해 전기차를 핵심 산업으로 지정했다. 2015년에 공개된 ‘중국제조 2025’엔 “전기차를 필두로 2025년까지 연간 3500만대 완성차를 생산한다”고 적혀 있다. 김한솔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 문구는 수요 진작보다 생산 확대에 방점을 두었다는 걸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2018년 중국 정부가 해외 업체의 중국 생산 규제를 풀자 테슬라를 시작으로 해외 브랜드의 공장이 들어섰다. 지방 정부가 부지 할인, 세제 감면, 생산 보조금 제공 등 생산시설 유치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1년 만에 500개 넘는 완성차 제조사와 공장 등이 설립됐다. 공급이 넘치자 업체들은 가격 경쟁을 시작했다. 2021년 중국 주요 전기차업체의 평균 차량 판매가격은 2021년 약 3만1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만4000달러 수준으로 감소했다.
중국 전기차업체 약 130곳 가운데 지난해 흑자기업은 BYD(비야디), 테슬라차이나, 리오토, 지리자동차 등 4곳이 전부다. 업계에선 2030년까지 생존할 수 있는 중국 업체가 15곳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도이치뱅크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 시장의 허핀달 허쉬만 지수(HHI)는 지난해 기준 850 정도다. HHI는 시장 집중도를 나타내는 지수로 통상 1500보다 낮으면 경쟁 과열로 본다. 김 선임연구원은 “일부 기업이 수출을 전략적 활로로 삼으면서 가격 하락 압력이 해외시장으로 전이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급과잉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주행거리가 ‘0㎞’인 중고차까지 등장했다. 차량 재고를 처리하려면 가격을 낮춰야 하기 때문에 주행하지도 않은 신차를 딜러가 구입한 뒤 중고차로 둔갑해 가격을 낮춘 명분으로 활용한 거다. 일각에선 ‘제로(0) 마일리지’ 중고차 덕에 BYD의 판매량 ‘숫자’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도 전기차 육성에 집중하던 정책의 방향을 틀었다. 지난 7월 ‘반부정당경쟁법’에 이어 지난달 ‘자동차 안정 성장방안’을 발표하고 기업 간 출혈 경쟁을 규제하고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기업의 시장 퇴출을 유도하고 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