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응원 할머니, 순찰차 실려온 학생들… 애타는 시험장

입력 2025-11-14 00:04 수정 2025-11-14 08:59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진 13일 오전 7시30분 서울 은평구 은평고 앞. 김모(18)군은 할머니 박모(74)씨의 배웅을 받으며 시험장에 들어섰다. 박씨는 손자가 추울까 봐 자신의 목도리를 손자 목에 감아주고 어깨를 두드리며 응원했다. 박씨는 “아침에 따뜻한 국을 먹이고 싶었지만, 손자가 너무 떨려 아무것도 못 먹겠다 해서 물과 간단한 간식만 싸줬다”고 말했다.

이날 수능 시험장 주변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수험생들 사이로 가족과 학교 후배, 선생님들이 응원전을 펼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수험생 자녀를 데려다주기 위한 차량 행렬도 길게 늘어섰다.

서울 종로구 중앙고 앞에서는 수험생 자녀가 차에서 내리자 학부모들이 창문 너머로 “잘해. 파이팅. 사랑해”라며 격려했다. 일부 부모들은 자녀가 시험장에 들어간 뒤에도 한참 동안 교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중앙고 앞에서 만난 정선아(49)씨는 “아침에도 혹시나 빼먹은 게 있을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며 “아들이 떨지 않고 공부한 만큼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인근 경복고 앞에서는 선생님들이 에너지바 등이 담긴 쇼핑백 등을 나눠주며 응원전을 펼쳤다.

입실 마감시간 직전까지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재수생 자녀를 둔 김모(54)씨는 “딸이 시계를 놓고 왔다고 해서 급히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중앙고에서도 한 수험생 어머니가 경찰에게 “아들한테 시계만 전달해주면 안 되겠냐”며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지각할뻔한 수험생도 있었다. 한 남학생은 입실시간을 불과 1분 정도 남겨두고 간신히 교문을 통과했다. 그 뒤를 이어 올라오는 남학생에게 감독관이 빨리 들어오라며 손짓으로 재촉했다. 중앙고에서는 30대로 보이는 남성이 가방도 없이 들어가다 외부인으로 오해받는 상황도 발생했다. 감독관이 “어떻게 오셨냐”며 붙잡자 이 남성은 “저 시험 보러 왔어요. 시험”이라고 말하며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입실 마감시간을 앞두고 신분증을 두고 온 사실을 알아차린 탓에 시험을 응시하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수험생 자녀가 급히 신분증을 가지러 간 사이 학부모 A씨는 “신분증 없이 시험 치를 방법이 없냐”며 애타게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청은 이날 오전 순찰차 수송 등의 수험생 편의제공 건수가 전국적으로 234건이었다고 밝혔다. 순찰차 수송이 134건으로 가장 많았고, 에스코트 36건, 수험표 전달 16건 등이었다. 오전 5시43분쯤 경기 서해안고속도로 팔탄 분기점 인근에서는 교통사고로 도로가 통제되자 경찰이 수험생을 순찰차로 태워 서울 중구 이화여고까지 50㎞를 수송했다. 결시생에 대한 실종신고가 접수돼 한강 수색까지 벌어지는 소동도 빚어졌다. 오전 9시10분쯤 경찰에 자녀가 결시하고 사라졌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인력이 수색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유경진 차민주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