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이었던 지난 11일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한 번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노래와 연주로 추모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극동방송(이사장 김장환 목사)이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한 ‘인천상륙작전 75주년 및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기념’ 2025 가을 음악회다.
김장환 목사는 이날 “이번 가을음악회는 한국전쟁 당시 피 흘려 헌신한 유엔연합군과 미군 참전용사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자유대한민국 수호의 전환점이 된 인천상륙작전 75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며 “앞으로도 가을음악회를 통해 잊혀진 감사의 주인공들을 찾아 위로와 존경의 마음을 나누겠다”고 말했다.
음악회엔 고려인(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장애인 등 사회·문화적으로 소외된 이웃 200여명이 초대돼 그 의미를 더했다.
자유 위해 싸운 이들의 희생을 노래하다
극동방송 김석현·김수연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가을 음악회는 박상현 지휘자가 이끄는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슈퍼맨 행진곡’ OST 연주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전 세계인에게 희망과 용기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슈퍼맨’의 메인 테마곡과 함께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군인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펼쳐지며 감동을 더했다.
소프라노 최정원은 ‘현대 가스펠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머스 A 도르시가 1932년 아내와 신생아를 잃은 비극 속에서 작곡한 ‘주여 이 손을’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의 후렴구를 메들리로 엮어 고난 중에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깊은 신앙의 고백을 노래했다. 테너 존 노는 한국 교회와 많은 크리스천에게 사랑받는 찬양 ‘은혜’를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으로 시작되는 편곡으로 선보였다. 그는 부드럽고 깊이 있는 음색으로 이 땅의 역사 속에서 나라를 지켜낸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노래에 담았다.
두 사람은 한국의 대표 민요 ‘아리랑’과 세계적인 찬송가 ‘나같은 죄신 살리신’ 곡을 메들리로 엮어 편곡한 노래도 선보였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함 속에 피리와 전통 장단을 더해 한국적 정서를 담아낸 무대는 국악과 서양음악의 조화를 통해 한국과 미국의 화합과 우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동시에 자유와 평화라는 공동의 가치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가을 음악회 총감독 극동방송 최혜심 국장은 “이번 공연은 한국의 자유를 지켜낸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음악과 영상으로 스토리 있게 구성한 것”이라며 “출연진과 스태프 모두 대한민국의 소중한 역사를 다시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관객들 역시 자유를 위해 헌신한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함께 나눴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맥아더 장군의 겸손한 신앙
“나는 웨스트포인트(美 육군사관학교) 시절 연병장에서 가장 즐겨 부르던 군가 중 하나의 후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그 노래 속의 늙은 군인처럼, 나 또한 지금 나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조용히 사라지려 합니다.”
맥아더 장군이 5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1951년 4월 19일 미국 의회에서 남긴 연설문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Old Soldiers Never Die)’는 미군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노래 속 한 문구다. 이 곡은 맥아더 장군의 명연설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다.
베이스바리톤 유명헌은 이날 군인 배우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맥아더 장군의 모습을 퍼포먼스로 재현했다. 맥아더 장군으로 분해 ‘노병을 죽지 않는다’를 열창한 유명헌의 뒤편으론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교장 시절부터 미 극동군 사령관, 필리핀 해방, 인천상륙작전에 이르기까지 자유 수호에 헌신한 맥아더 장군의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불과 한 달 만에 한반도의 대부분이 북한군의 점령하에 들어갔다.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며 위기에 처했을 때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상륙에 부적합하다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적의 방심을 노려 인천을 상륙지로 결정했다. 이어 9월 15일 새벽,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 북한군의 배후를 기습했고 며칠 만에 서울을 탈환하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낙동강까지 밀렸던 국군과 유엔군은 이를 계기로 반격의 발판을 마련해 2주 만에 서울을 완전히 수복했다. 맥아더 장군은 그렇게 ‘20세기 최고의 상륙작전 지휘관’으로 불리게 된다.
유명헌은 이어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을 불렀다.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던 맥아더 장군은 ‘주기도문 맨’이라고도 불렸다. 승리할 때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던 그의 겸손한 신앙은 1950년 9월 29일 서울 수복 기념 연설에서도 드러난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우리 부대는 한국의 옛 서울을 해방시켰습니다. 이 거리는 잔학무도한 공산주의 압제에서 해방되었으며 시민들은 다시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결정적인 승리를 우리에게 되찾게 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주기도문으로 영광을 돌려 드립시다.”
전쟁의 상흔 넘어 평화의 하모니
음악회 2부는 극동방송 서울·광주·창원·포항·부산 어린이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했다. 참전용사들이 피로 지켜낸 이 땅에서 태어난 다음세대 어린이들은 ‘소망과 기쁨 찬양’ 메들리를 부르며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감사와 희망을 노래했다.
절도 있는 군무와 현대적인 안무로 구성된 ‘믿음의 군사, 승리를 향한 행진’ 무대도 선보였다. ‘로마서 16:19’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힘차게 부르는 합창단 아이들의 동작과 눈빛은 승리를 향한 용사들처럼 단단했다. 자유대한민국을 이어 수호하자는 의지와 신앙의 확신도 표현했다.
서울극동방송 어린이합창단 서하엘(13) 부단원장은 “이번 가을음악회를 준비하며 6·25전쟁 때 알지도 못한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와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싸워주신 분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의 평화를 누리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애국심을 키워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곧 합창단을 졸업하는데 이번 무대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린이합창단은 대연합으로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굳건한 정신을 노래한 ‘아리랑 겨레’를 합창했다. “밟아도 뿌리 뻗는 잔디풀처럼, 시들어도 다시 피는 무궁화처럼”이라는 가사에는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불굴 의지가 담겼다. 맥아더 장군과 한국전쟁의 영웅들을 기린 이 무대는 깃발과 소품을 활용한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전쟁의 긴박함과 승리의 감동을 전했다.
마지막 무대에 오른 모든 출연진은 1988년 서울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를 함께 열창했다. 75년 전 자유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평화와 번영을 향한 염원을 담아 모두 하나 되어 노래한 이 피날레는 화합과 연합의 감동으로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극동방송 맹주완 사장은 “‘2025 극동방송 가을음악회’는 6·25전쟁 당시 자유와 평화를 지킨 유엔참전용사들과 믿음의 장군 맥아더의 삶을 함께 조명한 뜻깊은 무대였다”며 “이번 공연이 함께한 모든 이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남기고, 희생을 기억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