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사보다 성숙한 리더로서의 연구자 양성해야”

입력 2025-11-14 02:15
김영오 서울대 공대 학장이 최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대학장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과학기술 인재 양성 방안 관련 입장과 구상을 밝혔다. 김 학장은 “인재를 키우는 데 필요한 시간은 10년 정도”라며 “인재 정책은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현구 기자

정부는 지난 7일 과학기술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우수 인재 확보 구상을 밝혔다. 인공지능(AI) 융합 인재를 키우고 해외 우수 인재를 국내로 유치하는 방식으로 우선 양적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와 함께 AI 핵심 인재가 일찍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5년 반 만에 학사부터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칠 수 있는 패스트트랙을 신설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연구·교육 현장은 이런 정부의 과학 인재 양성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최근 김영오 서울대 공대 학장을 만나 들어봤다.

김 학장은 해외 우수·신진 연구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늘어나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사후연구원 1명당 연봉 9000만원을 지원하는 ‘이노코어’ 사업이 4대 과학기술원에서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대학까지 확장되면 고급 인력을 더 많이 데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학·석·박사 과정을 5년 반으로 단축하는 제도에 대해선 의구심을 표했다. ‘AI 전사’보다 성숙한 리더로서의 연구자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었다.

김 학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스타 엔지니어로서 조명받은 것은 성숙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라며 “교육적 차원에서 본다면 학생들을 박사급 인재로 빠르게 키우는 것보다는 도전, 실패 그리고 재도전을 통해 담금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똘끼 있는’ 인재 양성을 위한 서울대 공대만의 계획도 함께 밝혔다. 다음은 김 학장과의 일문일답.

-학생들의 기초과학이나 공대 진학 기피 현상의 실태는 어떤가.

“서울대 공과대학 학부에 매년 850~900명 정도 입학하는데 그중 120명가량은 중간에 이탈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휴학하는 학생들이 많아진 이후로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게 학생들의 진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추적해봐야 한다.”

-학생들이 공대 진학을 포기하는 주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이공계 전체 평균 연봉을 따져보면 공대 출신이 의대보다는 낮은 게 사실이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그에 맞는 정당한 보수를 받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의 자긍심을 키우는 일이다. 공대를 나온 산업 역군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었는지 알려주고, 지금의 학생들은 앞으로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의대를 못 가서 공대를 왔다’는 소리는 안 들어야 하지 않겠나.”

-한국을 떠난 이공계 인재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내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취업을 택한 학생이나 해외에서 유학해서 학위를 받은 뒤 글로벌 빅테크에서 근무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학생들이 10년, 20년 뒤에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용의 경직성이나 근무시간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본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스로 좋아서 일하는 문화나 중국의 ‘996 근무제’(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근로 문화)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근무 시간을 규제하는 게 아니라 신나게 일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과학기술 인재 양성 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노무현정부 때 정부과학기술보좌관을 신설하고 이공계 장학금을 늘리는 등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성과가 있었던 것처럼, 이번 정부에서의 정책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국가과학자’ 제도 신설 등은 사회 인식을 바꾸는 것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주변 교수님들과 간담회 등을 하면서 신진 연구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주택 지원이나 연봉 인상 등 파격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나눴는데, 학계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이라 반갑다.”

-AI 인재 양성은 속도전이 중요하다고 한다. 교육부에서는 5년 반 만에 학·석·박사를 모두 마치는 패스트트랙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는데.

“인재를 키우는 데 필요한 시간은 10년 정도라고 본다. 5년 반 만에 박사까지 마쳐서 나오는 ‘AI 전사’도 있을 수 있지만, 인재 정책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10년 이상 끌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에는 혁신적 사고를 하면서도 성숙한 AI 인재가 필요하다. 젠슨 황은 AI 전사라기보다 성숙한 리더에 가깝다. 그런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지금은 AI가 뜨지만, 10년 뒤에는 세상을 바꿀 또 다른 기술이 등장할 수도 있다. 적기에 필요한 인재를 어떻게 양성하는 게 좋을까.

“국립대학은 국가 지원을 통해 다양한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AI도 불과 10년 전만 해도 부흥기가 이렇게 올지 몰랐는데, 서울대에 AI 관련한 전공 교수가 20년 전부터 꾸준히 있었기 때문에 지금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립대학은 미래를 대비하는 다양한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 불확실한 대 전환의 시대일수록 여러 가지 대안으로서의 학문이 필요하다.”

-서울대 공대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학생들이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한다. 가칭 ‘엑셀 프로젝트’로, 그동안 키워보지 않은 인재를 발굴해 키울 생각이다. 내년부터 세상을 바꾸는 스타 엔지니어 등이 될 수 있는 소위 ‘똘끼 있는’ 학생들 40명을 선정해 전담 지도교수와 동문 멘토를 붙여 공동 지도체제를 구축하려고 한다. 학생들이 창업이나 심화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2000만원씩 최대 3년 지원할 계획이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