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국가조찬기도회, 그 길밖에 없다

입력 2025-11-14 00:30 수정 2025-11-14 09:41

한동안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문제로 사회가 들끓었다. 사실 국가조찬기도회는 대통령을 모시고 대통령을 위한 기도의 자리로 시작했다. 국회가 중심이 돼 대통령을 초청해 대통령을 위한,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였다. 이 기도회의 공(供)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가조찬기도회가 사단법인으로 출범할 때만 해도 건강한 기도회 모임이었다.

그런데 최근 국가조찬기도회 회장과 부회장이 관련된 부정적 사건이 불거지면서 국가조찬기도회의 민낯이 너무 과도하게 드러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국가조찬기도회가 이렇게 나락으로 빠져버리게 되었단 말인가. 물론 국가조찬기도회의 공만 있는 건 아니다. 독재정권을 위해, 신군부 쿠데타를 위해 기도한 어두운 역사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국가조찬기도회가 권력을 위한 예배 만들기라고 비판했다.

어찌 사람들이 모여 조직한 기관에 빛과 그림자가 없겠는가. 그러나 이번 사건을 접하고 나서 자체적으로 과감한 혁신을 해야 했다. 사건 당사자들이 빨리 사표를 내고 국가조찬기도회가 환골탈태를 해야 했다. 잘못은 잘못으로 인정하고, 또 자리에 연연하지 말며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내려놓아야 할 때를 분별하고 내려놓았어야 했다. 그리고 방향타를 잃고 있을 때 국회조찬기도회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정리되기 전까지는 잠정 패스하고 국회조찬기도회가 나서서 예정된 11월에 국가를 위한 기도회를 해야 했다. 지금 이 나라가 얼마나 중요한 시점에 있는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한·미 관세 협상이 잘 이뤄져 감사하지만 한·중 및 남북 관계가 여전히 얼음장 같다. 이런 상황에서 청탁이나 로비의 모임이 아닌 순수하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는 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과거 남북의 전쟁이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한국교회는 얼마나 기도했는가. 155마일의 녹슨 휴전선이 평화의 성막이 되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쏟았고, 삼천리 방방곡곡에 있는 기도원마다 구국집회를 열었다. 그런 기도회의 물결을 농축하고 축적한 기도회가 국가조찬기도회였다.

나는 한국교회 한 목사로서 이 사건을 목도하고 가슴이 아팠다. 일부 진영에서는 국가조찬기도회 폐지 운동을 하는 마당에 대통령이 어떻게 나와 기도의 자리에 함께하겠는가. 이때 국가조찬기도회가 완전한 새판짜기로 거듭나고 새롭게 출발했어야 했다. 그러나 사실상 때를 놓친 셈이다.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올해 한번 못한다고 해서 내년에도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나는 이러한 글을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물의를 일으킨 국가조찬기도회 회장과 부회장과의 인간관계상 이런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런 주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명감을 갖고 책상에 앉았다.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돈으로만 움직여지는 기관이 아니다. 지금까지 헌신하신 분들의 수고도 인정해야 하지만 눈물의 기도와 자성, 그리고 각성으로 다시 새로워져야 한다.

한국교회와 정계와의 소통, 또 재계와의 소통을 위해서라도 국가조찬기도회 폐지는 안 된다. 오히려 새롭게 거듭나 시대적 아픔을 보듬고 사회적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 해에 새롭게 여는 국가조찬기도회에 대통령은 꼭 참석해야 한다. 우리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같은 마음을 품고 이에 뜻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국가조찬기도회의 환골탈태, 그 길밖에 없다. 다시 교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 그리고 이 시대와 미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