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위헌 정당 해산 사유가 마일리지 쌓이듯 차곡차곡 적립되고 있다.”(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단군 이래 최악의 수사 외압이자 재판 외압이다. 명백한 직권 남용이자 탄핵 사유다.”(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5개월 지났을 뿐인데, 정치권은 이미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당해 직을 잃은 지 반년 만에 제1야당 대표는 현직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고, 여당 대표는 제1야당에 대한 해산을 공개적으로 언급한다. 민주화 이후 가장 강력한 의석수를 가진 여당과 그에 맞서는 제1야당이 서로를 향해 극단적 적의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현실에 국민은 깊은 피로감을 느낀다.
이재명정부의 첫 정기국회가 열린 지난 두 달간 용산과 여의도는 단 하루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국회 출석 문제로 한 달 넘게 사투를 벌이더니, 이번에는 ‘대장동 재판’ 항소 포기 논란으로 여야가 격돌 중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대했던 국민의 마음은 정치적 혐오와 실망으로 짙게 물들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더 안타까운 것은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재명정부를 관통하는 정책 지향점, 정책 목표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비롯한 각종 회의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국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관여한다. 스포츠·공연 암표 근절, 산업재해 예방, 업무상 배임죄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까지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 없다. 일각에서는 ‘만기친람’이라는 평가가 벌써 나온다. 그러나 정작 이재명정부가 어떤 국가 비전을 가지고 운항하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기억할 만한 구호는 ‘코스피 5000시대를 열겠다’ 정도다.
이제는 이재명정부를 상징할 국정의 큰 축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개헌과 세종 집무실 완성이다. 개헌은 더 이상 미룰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시대적 과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다. 각 당의 대선 후보들도 입을 모아 개헌 필요성을 외쳤고, 이재명정부 역시 출범 초기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의 제1과제로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헌법 개정’을 제시했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개헌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과의 통상·안보 협상을 비롯해 민생 과제를 챙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참모들의 말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개헌 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국회와 국민의 관심은 쉽게 식는다. 개헌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미루기 좋은 과제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종 집무실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은 청와대로의 재이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세종 집무실 건립 문제는 지난 9월 이후 대통령의 메시지에서 자취를 감췄다. 세종시 이전은 서울 민심과 맞닿아 있어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언급이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세종 집무실은 단순한 행정 편의나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국가 균형 발전을 실질적으로 이끌어낼 상징적 조치다. 대통령이 이 문제를 다시 꺼내야 공직사회도, 국민도 관심을 되살릴 수 있다.
대통령의 권한은 취임 첫날부터 매일 줄어든다. 암표 근절도, 주가 상승도 중요하지만 역사는 대통령이 남긴 구조적 변화로 그를 평가할 것이다. 이재명정부가 역사적 소임을 마치는 날 개헌과 세종 집무실 완성이라는 헤드라인을 국민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관심을 잃으면 공무원도, 국민도 관심을 잃을 수밖에 없다.
최승욱 정치부 차장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