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단계를 거치면 주위에 이민을 떠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간간이 소식만 들을 뿐, 딱히 이민의 의미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은 이민에 대해 거시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초점은 호주 그리고 청년에 맞춰져 있다. 호주라는 지역이 선택된 것은 저자의 이력을 보면 자연스럽다. 저자는 호주 로위연구소 이민정책실장을 거쳐 호주국립대 교수로 재직하며 호주 한인을 연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청년 이민일까. 활발한 경제활동을 통해 수입을 얻고 상당한 세금을 청년을 잃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고, 그들을 얻는 것은 국가 경쟁력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청년들의 150년 가까운 호주 이민의 역사를 담은 책을 읽기에 앞서 정리해야 할 개념들이 있다. 바로 배출 요인과 유입 요인이다. 배출 요인은 자의 혹은 타의로 왜 국가를 떠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부정적 요인이다. 가난일 수도 있고 차별이나 교육 등의 문제일 수도 있다. 반대로 유입 요인은 이민이 향하는 국가의 긍정적 요인이다. 근로 조건이나 거주 및 자연환경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시대에 따라 이 두 요인이 변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호주 이민사를 통해 굴곡진 한국의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다.
기록상 호주 최초의 한인 이민자는 ‘존 코리아’라는 인물이다.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던 1876년, 당시 17세였던 조선 청년은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하는 ‘로키엘’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호주에 도착한다. 당시 승객 명단이 존재하지 않아 본명은 알 수 없다. 그는 호주에 도착한 후 18년 만인 1894년에 시민권을 얻었다. 그때 귀화하면서 지은 이름이 존 코리아다. 저자는 존 코리아가 금을 찾아 호주로 향하는 중국인들의 ‘골드러시’ 행렬에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가난에 허덕이던 조선 말기 하층민이었을 존 코리아에게 호주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꿈이었다.
김호열은 호주에 유학 온 최초의 한국인이다. 경남 마산 창신중학교 교사였던 김호열은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 선교사의 도움으로 1922년부터 2년간 호주 멜버른대학에서 공부했다. 일제 강점기 한인 청년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개인의 능력으로 자력갱생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여러 선택지 중 하나는 국외 이주였다. 김호열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어두운’ 조선을 기독 교육을 통해 ‘빛’내고자 하는 포부가 있었다. 그가 호주를 선택한 것은 선교사들과의 인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호주의 지리적 이점이 작용했을 것으로 저자는 설명한다.
6·25 전쟁과 이후의 혼란은 또 다른 배출 요인으로 작용한다. 북한 출신으로 당시 참전 호주군과 인연을 맺은 최영길과 기지촌으로 흘러 들어가 호주군인과 결혼한 조영옥의 호주 이민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치적 또는 개인적으로 더 안전한 곳을 향해 이주했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말한다.
책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과 기술자들이 유색인종의 이민을 제한하는 호주의 ‘백호주의’ 철폐와 맞물려 대거 호주 이민을 선택했던 상황을 거쳐 최근 호주 조기 유학과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한 청년들의 명암을 조명한다.
1990년대 세계 여행 자유화 정책 시행을 기점으로 이민의 양상은 전환점을 맞는다. 이전까지는 기아와 전쟁, 가난을 피하고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 노동·기술 위주의 생존 이민이었다면, 이후로는 건강과 환경, 복지와 같은 삶의 질과 관련된 ‘웰빙 이민’으로 변해가고 있다. 저자는 이민이 당사자인 청년 이민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받아들인 사회와 국가 역시 진화하도록 만드는 매개체라고 말한다. 청년들이 향하는 곳을 추적하면 어느 사회와 국가가 발전할지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